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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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곤 전 닛산 최고경영자(CEO)/일본 일간공업신문 디지털

중동 레바논에서 도피 생활 중인 카를로스 곤(71) 전 닛산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실적 하락과 혼다와의 합병 무산으로 위기에 처한 닛산을 작심 비판했습니다. “자존감이 너무 높아서 문제다.” 닛산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곤은 최근 일본 주간지 ‘주간 포스트’와 단독 인터뷰에서 “과거의 성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는 닛산 직원들은 혼다의 자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닛산은 1933년 창립돼 한때 토요타에 이은 일본 자동차 2위 기업으로 입지를 다졌는데요. 최근 전기차 강세인 세계 시장에서 중국 등 해외 업체와의 경쟁에서 무기력하게 밀리며 실적 부진에 부닥쳤습니다. 지난해 2~3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90% 이상 급감했습니다.

우치다 마코토(왼쪽) 닛산 최고경영자(CEO)와 미베 토시히로 혼다 CEO

이에 닛산은 지난해 12월 세계 7위 자동차 대기업 일본 혼다와 경영통합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어요. 성사될 경우 토요타, 폭스바겐에 이은 세계 3위의 자동차 기업이 탄생하는 것이라 업계에 큰 화제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병 구상은 오래가지 못하고, 지난 13일 공식 무산됐습니다.

곤은 과거 파산 직전이었던 닛산의 구원투수로 영입돼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던 인물입니다. 브라질 출신 기업인으로 프랑스 자동차 대기업 르노 부사장으로 일하던 1999년, 르노와 닛산이 자본제휴를 맺으며 닛산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합류했죠.

2001년 CEO로 승진한 뒤 전체 직원 15%인 2만여 명을 해고하고 5곳의 국내 공장, 300곳 이상의 대리점을 폐쇄하는 등 살을 깎아내는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그 결과 버블 경제 붕괴로 2조엔이 넘는 부채를 떠안은 닛산의 매출을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19년 3월 일본 도쿄구치소에 구금돼 있다 보석으로 풀려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최고경영자(CEO)/산케이신문 유튜브

그러나 2018년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특수배임 등 혐의로 일본 검찰에 기소됐어요. 이후 구속까지 됐으나 10억엔(약 95억원)이란 거액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고,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앞둔 2019년 12월 레바논으로 극비리 도주했습니다.

레바논의 한 민간 용병 업체를 고용해, 음악단원을 가장한 용병들 사이 큼지막한 악기 상자에 숨어 삼엄한 공항 보안을 뚫고 탈출했죠. 이는 일본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이 화물 수색 절차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9년 12월 일본에서 재판을 앞둔 카를로스 곤 전 닛산 최고경영자(CEO)가 도주를 위해 숨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악기 상자/BBC

이후 지금까지 레바논 모처에 거주 중인 곤은 자신을 기소한 일본 검찰과 닛산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습니다. 당시 일본 검찰의 곤 기소는 그의 살인적인 구조조정에 불만을 품은 임원들과 수사 당국이 담합해 공모한 것이란 의혹이 적잖습니다. 예컨대 곤은 닛산 CEO를 지내던 2011~2015년 소득 50억엔을 축소 신고했다는 혐의를 받았는데, 이것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자동차 대기업 CEO를 구속할 정도의 사안이냐는 것입니다. 아울러 곤은 일본 검찰이 자신의 ‘무죄 추정의 원칙’을 박탈하고 가족의 안전을 볼모 삼아 자백을 강요했다고 주장 중입니다.

곤은 이날 ‘닛산과 혼다의 파담(破談)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느냐’란 물음에 “두 기업은 같은 일본 기업으로서 강점도 약점도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즉 서로 보완성이 없다. 설령 경영통합이 성사됐어도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 모델이 주력 상품인 두 회사가 합병했더라도 지금의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긴 역부족이었을 거란 진단입니다.

일본 자동차 대기업 닛산과 혼다 로고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닛산은 혼다와의 동등한 합병을 바랐지만, 혼다는 닛산이 자회사가 되길 바랐다. 결국 두 기업의 합병안은 추진 두 달 만에 무산됐다./로이터 연합뉴스

닛산·혼다는 경영통합 논의 초기엔 오는 2026년 새 공동 지주 회사를 세워 함께 산하로 들어가는 방식의 합병안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혼다가 이를 철회하고 닛산을 인수해 자회사화(化)하는 옵션을 새로 꺼냈어요. 이후 닛산이 이를 거절하며 합병안이 물거품이 됐죠. 곤은 “혼다가 (닛산) 자회사화를 원한 건 닛산 경영진에 대한 완전한 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닛산은 지난해 12월 혼다와의 합병 추진 사실을 발표한 뒤 전체 직원 7%인 9000여 명을 해고하고 생산 구조 20%를 삭감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구조조정도 혼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거란 관측입니다. 곤은 “(닛산의) 문제는 비용 절감이 아닌 리더십”이라며 “적절한 제품에 투자하고, 브랜드를 강화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가져야 하는데 지금의 닛산엔 이 모든 것이 부재하다”라고 했습니다.

'도쿄 타워'가 보이는 일본의 수도 도쿄의 전경/조선일보DB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76~77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20년 무허가 영업, ‘공포의 동물원’의 최후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5/02/12/3T2HC74ZF5EMHCK7UZ2FRMHW54/

“내 동네는 내 손으로 지킨다” 일본의 외국인 소방단☞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5/02/19/QL4F4LEFERBRVN4LZB4V7N6B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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