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일본 도쿄 도쿄돔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요미우리 자이언츠 연습 경기. 3회 무사 주자 2루에서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31)가 나왔다. 뭔가 해줄 것 같은 기대감에 숨죽이던 관중들은 오타니가 요미우리 에이스 도고 쇼세이(25)의 낮은 커브를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넘기자 엄청난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이날 도쿄돔에는 4만2064명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도고는 지난해 일본 리그 12승 8패 평균자책점 1.95를 기록한 팀 에이스였지만 다저스 화력에 6이닝 5실점으로 고전했다.
이날 경기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도쿄 시리즈’ 개막전을 앞두고 몸을 푸는 차원에서 진행된 번외 경기. 그럼에도 열기는 본 경기 못지않게 뜨거웠다. ‘도쿄 시리즈’는 MLB 사무국이 저변 확대를 위해 해외에서 치르는 이벤트 경기. 지난해엔 서울 고척돔에서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맞붙은 바 있다. 도쿄에서 열리는 건 이번이 6번째다. 가장 최근은 2019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경기를 가졌다.
‘도쿄 시리즈’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다저스는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18~19일 도쿄돔에서 2연전을 치른다. 두 팀에는 일본인 야구 스타들이 즐비하다. 다저스는 오타니 외에도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사사키 로키가 있고, 컵스에는 이마나가 쇼타와 스즈키 세이야가 뛴다.
일본 내 흥행을 돋우기 위해 다저스와 컵스는 개막전에 일본인 메이저리거 5명을 전면에 내세울 예정이다. 다저스는 1·2차전 선발투수로 야마모토와 사사키를 예고했다. 오타니는 지명타자로 나온다. 컵스도 1차전 선발로 이마나가로 통보했다. 스즈키도 외야수로 주전 출장한다.
개막 경기 입장표는 이미 매진됐고 1·2차전 입장권 재판매 가격은 2000달러(약 290만원)와 1500달러(약 220만원)까지 치솟았는데 암표 가격이 200만엔(약 1960만원)까지 도달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MLB 사무국은 일본 150개 이상 영화관을 통해 개막전을 생중계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두 팀이 요미우리와 한신 타이거스와 벌이는 연습 경기에도 일본 야구 팬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15일과 16일 양일 펼쳐진 연습 경기에서는 한신이 다저스와 컵스를 모두 3대0으로 잡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신은 지난해 센트럴리그 2위, 재작년 일본 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강팀이긴 하지만 주전이 대부분 나온 MLB 강팀을 모두 무실점으로 막은 건 의외였다. 이날 경기에선 K팝 걸그룹 트와이스 일본인 멤버 미나, 사나, 모모가 시구를 하기도 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다저스에 합류한 김혜성(26)은 개막 명단에 들지 못했다.
아무래도 관심 초점은 오타니에게 쏠린다. 일본 야구 전문 매체에선 연습 경기 홈런에 ‘1인치(2.5cm)의 오타니’라는 제목으로 오타니가 올해는 작년 54홈런을 넘는 60홈런도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오타니가 올해 야구 방망이를 작년(34인치·약 86.4cm)보다 1인치 긴 35인치로 바꿨다는데 연습 경기 홈런이 “작년 배트였다면 끝부분에 맞아, 담장을 못 넘겼을 테지만 1인치 덕분에 공을 배트 중심에 맞혔다”며 “원심력이 증가한 만큼 비거리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일본을 찾은 MLB 타국 선수들도 일본 내 ‘오타니 열풍’에 놀라고 있다. 오타니 팀 동료 다저스 블레이크 스넬은 도쿄 한 편의점에 걸린 오타니 광고를 보곤 “나도 이 사람 안다”는 익살스러운 문구를 담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2018년과 2023년 사이영상 수상자이기도 한 스넬은 “그는 일본 어디에나 있었다”고 전했다.
오타니는 실제 패밀리마트(편의점)·이토엔(음료회사)·코세(화장품)·코나미(게임)·JAL(항공사)·미쓰비시 UFJ 은행(금융)·니시카와(침대) 등 20여 곳 광고 모델이기도 하다. 지지난해 일본 간사이대는 오타니 경제 효과가 약 1168억엔(약 1조1430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다저스 역시 오타니 효과 수혜자다. 다저스는 현재 오타니에게 매년 연봉을 200만달러만 주고 있다. 계약 총액 중 97%는 계약 종료 이후 10년간 분할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반면 작년 오타니 덕분에 늘어난 다저스 후원 기업 수입은 7000만달러(약 1020억원)가량으로 추산됐다. 다이소와 코세, 야쿠르트, ANA, 도요타이어 등 일본 내 유명 기업들이 줄줄이 다저스와 계약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