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은행 ATM기에 설치된, 한국 스타트업이 만든 S레이. 이 제품은 ATM 앞에서 전화통화할 경우에 통화를 방해해 보이스피싱을 예방할 수 있다. /캐치플로우 제공

일본 경찰청이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이용한도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루 인출·이체할 수 있는 한도를 최대 30만엔(약 292만원)으로 제한하는 방안이다. 급증하는 보이스피싱과 같은 특수 사기에서 고령자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25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찰청은 범죄 수익 이전 방지법의 관련 규칙을 개정해 이 같이 고령자의 이용한도를 일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신문은 “경찰청은 전국은행협회 등과 세부 방안을 조율 중”이라며 “일괄적으로 인출 제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일본은 그동안 ATM의 이용한도액을 각 은행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겼다. 예컨대 인출은 하루 최대 50만엔, 송금·이체는 100만엔과 같이 은행마다 제각각이다.

일본에선 범죄 조직이 고령자 등에 전화를 걸어, 가족이나 공공기관 등을 사칭해 ATM으로 유도한 뒤 지정된 계좌로 송금하게 하는 특수 사기 피해가 만연한 상황이다. 특수 사기 피해금액은 작년 721억엔(약 7000억원)으로, 전년보다 60%나 급증했다. 역대 최대 피해액을 기록했다. 주로 고령자가 타깃으로, 작년 피해자 2만951명 가운데 약 45%인 9415명이 75세 이상이었다.

일본 정부는 작년 6월 각료 회의에서 고령자의 ATM 이용 제한을 포함,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경찰청은 한도 제한액을 고령자들이 불편을 가장 적게 겪는 수준인 하루 30만엔으로 정했다. 고령자들이 큰 금액을 인출하는 주된 금융거래인 연금 지급액을 고려한 것이다. 여기에 개인 사업을 하는 고령자는 예외로 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일각에선 범죄 조직이나 가해자가 아닌, 잠정적인 피해 우려자의 행동을 제약하고 불편을 주는 규제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에선 이달 24일에도 유사한 규제가 나왔다. 일본 지방 정부인 오사카부 의회가 과거 3년간 ATM에서 송금한 이력이 없는 70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하루 인출액 한도를 10만엔 이하로 제한하는 조례 개정안을 가결한 것이다. 또 고령자가 휴대폰 통화하면서 ATM을 조작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금융기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