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내 중국계 범죄 조직이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하교 중이던 10대 소년을 납치하고 손가락을 자르는 일이 발생했다. 필리핀 정부가 현지에서 불법 온라인 도박장을 운영하는 중국계 범죄 조직을 대상으로 단속에 나서자, 수익 통로가 막힌 이들이 납치 범죄로 눈을 돌리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28일(현지 시각) AP통신과 마닐라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20일 마닐라 국제학교에서 하교하던 14세 중국인 소년이 실종됐다. 이 소년은 운전기사가 모는 차에 탑승했는데 두 사람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이후 운전기사는 마닐라 인근에 방치된 다른 차량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납치범들은 소년의 가족에게 2000만달러(약 289억원)의 몸값을 요구했다. 그러나 소년의 부모가 거절하자 몸값을 100만달러(약 14억원)로 낮췄다. 또 소년의 오른쪽 새끼손가락 일부를 자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은 뒤 소년의 부모에게 보내며 협박했다. 납치범과 부모는 중국 메신저앱 위챗을 통해 소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추적에 나서자 납치범들은 소년을 마닐라 파라냐케의 한 거리에 버리고 도주했다. 소년은 지난 25일 밤 무사히 구조돼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납치 배후는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 운영자로 알려졌다. 필리핀 역외 게임 사업자(POGO)로 불리는 필리핀 내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시절에 번성했지만 온라인 사기·인신매매 등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작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을 연말까지 폐쇄하도록 지시하면서 수많은 업장이 문을 닫았고, 일부 운영자는 상당한 빚을 졌다. 필리핀 정부에 따르면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들이 문을 닫은 뒤에도 그곳에서 일하던 중국인이 여전히 1만1000명가량 필리핀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아니토 빅터 레물라 내무부 장관은 “중국계 범죄 조직이 불법 온라인 도박장이 폐쇄된 이후 납치 등 다른 범죄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가상 화폐, 로맨스 스캠, 투자 사기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레물라 장관은 온라인 도박장 폐쇄 이후인 지난달 납치 사건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까지 보고된 납치 사건 8개 모두 중국계 범죄 조직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대통령 직속 조직범죄대책위원회는 지난 26일 마닐라 인근 파사이시의 한 건물에서 비밀 영업하던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을 단속, 현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401명을 체포했다고 이날 밝혔다. 이 중 한국인이 24명이었으며 중국인 207명, 베트남인 132명, 인도네시아인 14명, 미얀마인 12명, 말레이시아인 11명과 필리핀인 52명 등이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