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9시(미 동부 시각) 미국의 유명한 보수 논객 벤 샤피로가 만든 언론사 ‘데일리 와이어’의 인터넷 방송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32세의 젊은 흑인 여성 보수 논객 캔디스 오웬스의 토크쇼에 전화로 출연한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오웬스는 “2024년 (대선에) 출마할 건가. 만약 그렇다면 내가 당신의 부통령이 될 수 있나”라고 웃으며 물었다. 트럼프는 “그러면 환상적일 것”이라고 호응하며 “적당한 때에 (대선 출마) 발표를 하기를 고대한다”고 답했다. 또 “아직 너무 이르지만 (내가 대선에 출마하면) 사람들이 아주, 아주 행복해할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토크쇼의 주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앞길’이었다. 마치 트럼프의 2024년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목적인 듯했다.

약 1시간 후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오늘 밤 마라라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멋진 저녁 식사를 했다”며 “2022년 하원과 상원을 다시 가져오기 위한 협력에 대해 얘기하며 저녁을 보냈다”고 썼다. 트럼프가 퇴임 후 부인 멜라니아와 살고 있는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내년 중간선거에 대비한 공화당 승리 전략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날 또 ‘도널드 J. 트럼프의 책상에서’란 블로그 형식의 온라인 플랫폼도 공식 출범시켰다. 트럼프가 3월 말부터 각종 현안에 대해 쓴 짤막한 글들을 모아 놓은 웹사이트였다. 그 안에 있는 ‘기부하기’ 메뉴를 클릭하니 정치 자금 모금 사이트로 연결됐다. 이번엔 ‘쇼핑하기’를 클릭했더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빨간 모자 등을 판매하는 온라인 기념품 숍이 나왔다.

트럼프가 퇴임 후 웹사이트를 개설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트럼프는 ‘대선은 사기’라는 자신의 주장이 미 연방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로 이어지면서 지난 1월 트위터 계정을 영구 정지당했다. 목소리를 잃은 그는 퇴임 직후 미국의 45대 대통령이라는 뜻을 담은 ’45오피스 닷컴’이란 웹사이트를 열었다. 배경 디자인에 미국 대통령의 공식 문장(紋章)을 빼닮은 독수리 문장을 넣어, 퇴임 후에도 대통령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나는 웹사이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홈페이지로 사용하는 '45office.com'의 화면. 대통령실 문장과 비슷한 독수리가 들어간 문장 아래 백악관에서 기자회견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7400만표(약 47%)를 얻었던 트럼프가 퇴임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공화당 내에서의 인기는 여전히 상당하다. 지난달 27일 NBC방송이 성인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2%가 대선 주자로서 트럼프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지난 1월 등록 유권자를 상대로 조사했을 때의 선호도 40%보다는 떨어졌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공화당원 중 44%는 공화당보다 트럼프를 더 좋아한다고 답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10일 ‘공화당은 트럼프의 당이고 모든 공화당원의 길은 마라라고로 통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트럼프의 인기를 의식한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이 주요 행사를 마라라고에서 개최하며 자금을 모아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트럼프는 마라라고가 더위 탓에 문을 닫는 여름 동안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골프 클럽으로 거처를 옮겨 뉴욕의 공화당 지지층에게서도 정치자금을 모금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나온 사진을 배경으로 페이스북의 로고가 떠 있는 휴대폰이 트럼프의 입을 가리는 형태로 연출된 사진. 트럼프는 지난 1월 의사당 난입 사태 때 소셜미디어로 폭력을 두둔하고 방조한 정황 때문에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업계로부터 계정 정지를 당했다. /AFP 연합뉴스

이런 흐름 속에 하원의 공화당 서열 3위로 트럼프에 반박하는 목소리를 내온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 리즈 체니 의원총회 의장은 지도부에서 쫒겨날 위기에 처했다. 하원 당내 서열 1위인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는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체니가 의장 역할을 해낼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원들의 우려를 들었다”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매카시의 지원을 받은 친(親)트럼프 의원들이 체니를 축출하기로 결의하고 누구로 의장을 교체할지 의논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페이스북은 일시 중지된 트럼프의 계정을 복구할지 여부를 5일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