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신 제조업체 모더나가 “8월 코로나 백신 공급 물량을 당초 계획(850만회분)의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고 통보해 국내 접종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진 가운데, 정부는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을 포함한 대표단을 파견해 재발 방지를 요청하기로 했다. 손영래 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10일 브리핑에서 “모더나의 공급 계획 변경은 엄중하게 항의해야 한다. 재발 방지에 대한 확약을 받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모더나 공급 차질은 이번이 네 번째다. 특히 7~8월에만 벌써 세 번째로 접종을 본궤도에 올려야 하는 3분기에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모더나는 지난달 중순 공급 연기를 통보한 데 이어, 27일에도 7월 하순 보내주기로 한 물량을 8월로 연기했다. 기본적으로는 공급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모더나에 귀책 사유가 많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모더나의 ‘이상 징조’는 이미 지난달 주요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모더나의 미국 제조 책임자를 인용, 백신 생산에 필수적인 초대형 멸균 비닐봉투 등이 부족해 공급 지연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 BBC도 공급 부족이 “초대형 멸균 비닐봉투뿐 아니라 필터와 플라스틱 파이프 등 제조 공정 물품 부족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어서 6일 후인 지난달 27일 모더나는 이메일 성명을 통해 “백신 생산 파트너들의 실험실 테스트 작업으로 공급 지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백신 부족, 지연을 해결할 재고가 없기 때문에 2~4주간 단기적 공급 지연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같은 날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존 러포어 모더나 부회장과 화상회의를 갖고 “(백신을) 8월에 차질 없게 공급하겠다는 확약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일 “8~9월 백신 물량은 차질 없이 도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불과 1주일 만에 허언이 돼버렸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9일 “모더나가 생산실험실 문제 여파로 8월 계획한 물량 850만회분의 절반 이하를 공급하겠다고 알려왔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로써 앞으로 정부의 백신 접종 관련 발표를 과연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느냐는 불신과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세계 경제 10위권의 대한민국 정부가 백신 제약사를 과연 제대로 상대하고 있느냐는 분노도 커가고 있다.
모더나가 자체 생산·유통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는 근원적 한계는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지적돼왔다. 모더나는 2010년 하버드대 의대와 MIT의 교수가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 하나를 갖고 보스턴에 세운 연구 벤처다. 원천 기술 개발에만 전념한 벤처라 자체 생산 인프라는 전무했다. 모더나는 이번에 mRNA 코로나 백신이 각광받기 전까진 미국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비교하자면 같은 mRNA 백신을 개발한 독일 바이온텍사와 비슷한 경우다. 바이온텍이 172년 된 미 대형 제약사 화이자와 손잡고 생산·유통을 전담케 한 것과 달리, 모더나는 미·유럽의 여러 중소 제약사와 개별 계약을 맺는 방식을 택했다. 이에 따라 백신 원액은 스위스 제약사 론자가 생산하고, 병입은 미국 카탈란트와 박스터, 프랑스 레시팜, 스페인 로비 등 여러 회사의 공장에 나눠 맡기고 있다. 한국 삼성바이오로직스도 모더나와 병입 생산 계약을 맺었다. 현재 한국 등 외국에 보내는 물량은 스페인 로비에서 병입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불안정한 시스템 탓에 모더나 백신을 일정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모더나는 지난 4월 “유럽 지역 생산 문제 때문에 미국 외 국가로의 백신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란 예상을 내놓았는데 실제 캐나다는 6월까지 받기로 했던 약 5000만회분 물량 중 4000만회만 공급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일본도 지난 6월까지 4000만회를 공급받기로 돼 있었지만 실제 공급량은 1370만회에 그쳤다. 우리 정부는 모더나의 전 세계 백신 공급 현황을 점검해가며 철저한 대응으로 백신 미공급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했어야 하나 어디서도 그런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더나로부터 백신 공급을 확약받았다”는 식의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된 발표를 잇달아 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끌어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