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지역이 기록적인 가뭄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각 주(州)에서 ‘잔디 퇴출’ 정책이 공격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물을 많이 먹는 잔디가 수자원 낭비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다.
미 서부는 2000년부터 가뭄과 폭염, 대형 산불이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올 들어 강수량은 역대 최저다. 콜로라도강과 저수지들이 바닥을 드러냈고, 폐업하는 농장과 목장이 속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최근 ‘물 부족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LA와 벤투라, 샌버너디노 등 남부 카운티는 다음 달부터 잔디에 물 주기나 세차 같은 활동을 일주일에 1회로 제한하기로 했다. 비가 온 뒤 48시간 이내에는 잔디 스프링클러 가동을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하루 최대 500달러(약 63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콜로라도주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잔디에 물을 주는 것을 금지했다. 위반 시 최대 1000달러(약 127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유타주는 ‘미관을 해친다’며 사용을 금지했던 인공 잔디를 합법화해 자연산 잔디를 대체하도록 했다. 네바다주는 지난해 잔디 구장 등을 제외한 ‘비(非)기능 관상용 잔디’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양당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오는 2027년까지 관상용 잔디를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 이에 따라 요즘 라스베이거스의 고급 주택과 상업 시설에선 앞마당에 깔린 잔디를 걷어내고 선인장 등 사막형 식물로 채우는 조경 작업이 한창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캘리포니아 해변 휴양지 샌디에이고에서는 앞마당 잔디를 없애는 데 시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잘 가꾼 잔디는 미국에서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부(富)와 지위의 상징이었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관리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잔디는 같은 면적의 수영장을 유지하는 것만큼 물을 소비한다. 밀이나 옥수수 같은 작물보다 훨씬 물을 많이 먹는다. 미 서부 주 정부들이 주민 물 소비 행태를 분석한 결과, 실내보다 옥외 사용량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이 잔디였다고 한다. 실내 하수는 정수해서 재활용할 수 있지만, 잔디에 뿌린 물은 대부분 증발한다는 것이다. CNN은 “위대한 미국의 잔디(Great American Lawn)는 기후 변화를 맞아 감당하기 힘든 사치품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