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16일(현지 시각) 독일과 일본의 군비 확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 당국자는 독일과 일본 두 국가의 군비 증강에 대해 ‘국제사회에서의 긍정적 역할 확대’라고 규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중국의 군사력 팽창, 북한 도발 위협 등의 복합 위기 상황에 처한 미국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양국의 ‘군사적 재무장’을 본격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로이터 연합뉴스

바이든 정부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이날 미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주최한 화상 간담회에서 ‘일본과 독일의 재무장(rearmament)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미국은 일본이 전반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내리는 그런 결정을 완전히 신뢰한다”고 했다. 또, “일본은 아시아 및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헌신하고 있다”며 “우리는 일본이 국방만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변화나 동남아 문제 등 모든 분야에서 역할을 확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캠벨 조정관은 이어서 “독일 정부도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비극(러시아 침공) 등의 문제에 긴밀히 관여해왔다”며 “(독일이) 국방비를 증가시키는 것은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자유 진영에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두 국가의 군사 증강은 대중·대러 견제 등 역내 안보 강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이다.

캠벨 조정관은 “독일은 매우 책임 있는 나라이며 과거(2차 세계대전 전범국)의 기억 때문에 유럽이 우려한다고 보지 않고,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두 나라가 야기했던 불행한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두 전범 국가의 군사 팽창을 우려하는 일각의 시선까지 미국이 나서서 방어해준 것”이라며 “(두 국가 재무장에) 상당히 ‘직접적인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두 나라 ‘무장화’의 길이 트였다”며 “전쟁을 일으켰던 두 나라의 ‘죄책감’은 2차 대전 마지막 생존자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캠벨 조정관의 이 같은 공개 발언은 일본과 독일이 ‘군사적 재무장화’를 추진 중인 상황에서 나와 상호 교감이 있었는지 주목된다. 일본 집권 여당 자민당은 다음 달 10일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적 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 5년 내 방위력 강화를 위한 국방 예산 증액 등을 공약했다. 반격 능력은 일본이 공격을 받기 전이라도 확실한 공격 징후가 포착된 경우라면 적국의 탄도미사일 발사 기지 등을 원거리에서 미리 파괴하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선제 공격도 가능하다는 선언에 가깝다는 평가다.

이를 포함하는 국방력 강화를 위해 5년 안에 방위비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회원국에 제안하는 GDP 2%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일본은 1960년대 이후 방위비를 GDP의 1%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암묵적 ‘룰’로 지켜왔다. 올해 방위비 역시 5조4005억엔으로 GDP의 0.94% 정도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5월 말 방일한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일본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방위비를 크게 증액하겠다는 결의를 전달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를 얻었다”고 말한 바 있다.

독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독일 연방하원은 이달 초 1000억유로(약 135조원)의 특별방위기금 조성안을 승인했다. 독일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사흘 뒤인 2월 27일 “더 이상 발사 안 되는 총, 날지 못하는 전투기, 항해하지 못하는 전함으로 독일군을 무장하지 않겠다. 이는(군비 증강은) 우리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독일의 국방비 지출액은 470억유로로 GDP 대비 1.53%였는데 이 결정으로 2024년까지 매년 GDP 대비 2%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게 됐다. 독일은 이 기금으로 미국의 최신식 전투기 F-35, 치누크(CH-47F) 헬기, 이스라엘제 드론 등을 구입할 예정이다. 독일 의회는 방위 기금 확보에 필요한 추가 채권 발행을 위해 헌법도 개정했다. 독일 헌법은 정부 부채의 규모를 GDP의 최대 0.35%로 제한해왔는데, 방위 기금은 예외로 하도록 했다.

세계 3·4위 경제 대국인 일본과 독일이 군사 분야에서도 미·중에 이어 3위를 다투게 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엇갈린다. 일본과 독일이 올해부터 방위비 예산을 GDP 2% 수준으로 증액한다면 각각 100조원에 달해, 세계 2위 군사 대국인 중국(1조4504억위안·279조1400억원)과 격차를 좁히게 된다. 유럽·아시아 지역의 군비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패권 갈등이 고조되는 ‘신냉전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란 우려가 만만치 않다.

특히 과거사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일본의 군비 확장은 필연적으로 한국, 중국과의 마찰을 부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 화해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대규모 군비 확장은 한국 시민사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동력을 얻기 힘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의 군사력 확장은 일본 우익 세력을 강화시키고,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려는 개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한국 내의 반발을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동맹 균열’ 시대에 이어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등을 목격한 국가들이 자국의 방위력 강화에 나서는 것에 대해 다른 국가들이 반대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이언 브루마 미 바드대학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에 기고한 칼럼에서 “(중도좌파 성향의) 사민당 출신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이 군사 팽창주의를 되살릴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이어 “더욱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복귀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워싱턴을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워졌다는 시각이 많다”고 했다.

두 나라의 재무장화가 향후 ‘미국 독주 체제’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유럽의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마크 레너드 이사는 지난 13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독일과 일본이 긴밀히 협력하면서 유럽과 아시아의 역내 안보 사안들에 더욱 깊이 관여할 것”이라며 “(미국 주도 정책을 넘어) 자신들의 의제 설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패권 체제)의 끝’이라고 했다. 독일은 작년 미국·일본·독일 등 5국 군함 20척이 참여하는 해상 연합훈련에 참여해 일본에 호위함 ‘바이에른’을 보냈다. 독일 호위함이 일본항에 기항한 것은 20년 만이라고 독일 언론 매체들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