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참모들이 대선 기간에 경쟁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연설을 TV로 지켜보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트럼프의 재선 도전 과정을 가감 없이 기록한 저스틴 웰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부상(浮上)의 기술’(원제 The Art of the Surge)이 이달 초 공개된 것이다. 트럼프와 대선 참모진의 내부 회의 등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미 정가에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진용과 국정 운영을 가늠할 영상 자료라는 반응도 나온다.
작품은 지난 8월 시카고의 민주당 전당대회 무대에 오른 해리스의 후보 수락 연설을 트럼프와 참모진이 약 2800㎞ 떨어진 라스베이거스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스위트룸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상황실 격인 스위트룸에는 미국 첫 여성 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된 수지 와일스(67) 공동 선대본부장, 댄 스커비노(48) 전 백악관 부실장, 제이슨 밀러(50) 캠프 공보 담당 선임 고문, 스티븐 밀러(39) 전 백악관 수석 고문, 털시 개버드(43) 전 하원의원, 맷 게이츠(42) 하원의원 등이 함께했다. 선거 기간 내내 가장 가까이에서 트럼프를 보좌했던 그룹이자, 트럼프 2기 요직에 최우선 발탁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들이다.
해리스가 지지자들에게 반복해서 “감사하다”고 하자 콜라를 마시던 트럼프는 “미친 것 아니냐. 왜 저렇게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냐”라고 한다. 이어 바로 옆에 앉은 내털리 하프(32)에게 “그래, 이거 올려”라고 말한다. 빨간 원피스 차림의 하프는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감사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너무 빠르게 한다. 그녀(해리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글을 올렸다.
하프는 캠프 내에서 ‘인간 프린터’로 불리는 트럼프의 최측근 비서다. 소셜미디어의 주요 게시물을 큰 글씨로 인쇄해 보고하고, 트럼프가 하는 말을 실시간으로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트럼프가 “(해리스의 연설을) 몇 명이나 보고 있냐”고 중얼거리자 하프가 곧바로 “댄, 몇 명이나 보고 있어요?”라고 소리친다. 트럼프의 캐디 출신인 댄 스커비노는 2016년 대선 때부터 소셜미디어 전략 등을 담당한 최측근이다. 하프의 캠프 내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트럼프는 쉴새없이 하프를 통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고, 참모들은 트럼프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 해리스의 연설을 비판하는 문구를 경쟁하듯 보고했다. 언론과 소통하는 대신 국민과 ‘직거래’하겠다는 트럼프의 스타일이 드러난다는 평가다.
작년 10월 민주당을 탈당하고 캠프에 합류한 개버드가 “그녀(해리스)는 세계를 3차 대전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하자 트럼프는 그대로 따라 하면서 소셜미디어에 올리라고 하프에게 지시했다. 사모아계 최초로 연방 하원(하와이)에 입성한 개버드는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군인 출신이다. 현재는 트럼프 인수위원회 소속으로, 외교·안보 요직에 기용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선봉장인 강경파 게이츠가 “해리스는 과거 범죄를 일으킨 ‘폭도’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돈을 댔다”고 하자 트럼프가 “이것도 올리자”고 했다. 2020년 해리스가 지지자들에게 ‘미네소타주 자유 기금’ 후원을 요청한 일을 지목한 발언이다. 이 기금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미네소타주에서 저소득층의 보석금 마련을 돕기 위해 조성됐지만, 보석으로 풀려난 피고 일부가 폭력 혐의로 다시 체포되면서 논란이 됐다.
공보 담당 제이슨 밀러가 자기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켜고 “해리스가 중국에 대해 이야기했나? 하지 않았다” “정책에 대한 말은 거의 없다”고 말하는 모습도 나온다. 이는 실제 트럼프 캠프의 성명 등에 사용됐다. 밀러는 백악관 공보 담당 국장 등에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반(反)이민 책사였던 스티븐 밀러가 “해리스는 새로운 길을 열겠다고 했지만 지난 3년 반 동안 한 것이 없다”고 하자, 트럼프가 따라 하면서 ‘이것도 올리자’고 한다. 해리스가 조 바이든 행정부 임기에 국경 문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꼬집은 것이다. ‘사상 최대의 불법 입국자 추방’ 등 공약을 입안한 밀러는 국토안보부 장관 및 백악관 고위직 등에 유력 검토되고 있다.
영상엔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 받은 할리우드 명감독 올리버 스톤도 등장한다. 그는 해리스 연설 막바지에 격앙된 얼굴로 “미국에 6000만명의 빈곤층이 고통받고 있고 먹을 것도 없는데 해리스는 이들에 대해선 한마디도 안 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에선 그가 트럼프 암살 시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 예정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지만, 스톤은 최근 “그럴 계획은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영상이 공개된 유튜브 등엔 “영화보다 흥미진진하다” “해리스 캠프 내부도 보고 싶다”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영화 비평 사이트 IMDb가 평점 8.0점(10점 만점)을 줬고,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성향을 떠나 정치의 속살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며 호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