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정오(한국 시각 21일 오전 2시)에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취임식을 시작으로 백악관에 재입성한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해 실권한 지 4년 만에 시작되는 ‘트럼프 2기’다. 다수의 사법 리스크에도 1기 때보다 많은 표를 얻으며 더 강력하게 돌아오는 트럼프는 기존 정치·외교·무역의 틀을 깬 거침없는 ‘미국 우선주의’를 예고하고 있다. 세계 주요국들은 트럼프 취임 전부터 안보 전략을 점검하고 경제 동맹을 강화하면서 거센 변화가 닥칠 앞으로의 4년을 위한 ‘리셋’을 시작했다.
트럼프가 “내 취임식 전에 전쟁을 끝내라”고 압박해온 이스라엘과 하마스(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단체)는 1년 3개월 동안 전쟁을 벌인 끝에 트럼프 취임 하루 전인 19일 휴전에 돌입했다. 트럼프가 무역 전쟁을 선포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17일 트럼프와 통화한 데 이어 조만간 베이징 혹은 워싱턴 DC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여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전해졌다. 트럼프의 관세 압박에 총리가 물러나게 된 캐나다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대응을 공약한 경제 전문가들이 차기 총리 출마를 잇달아 선언하고 있다.
한편 워싱턴 DC에 예보된 한파로 대통령 취임식 장소는 야외인 미 국회의사당 서쪽 광장에서 의사당 내 원형 중앙홀로 17일 변경됐다. 실내 취임식은 1985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이후 40년 만이다.
◇취임하기도 전에 트럼프 정책 맞춰 세계는 지각 변동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후 트럼프는 빠르게 내각을 선임하고 2기에 밀어붙이겠다는 정책들을 발표해 왔다. 세계 각국은 4년 만에 돌아오는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면서 이에 맞춰 외교·경제·안보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은 “미국은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여전히 세계 초강대국이다. 모든 국가가 트럼프의 한마디 한마디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요국들은 우선 트럼프가 반복적으로 예고한 광범위한 관세 인상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 동맹 구축에 나서고 있다. EU(유럽연합)와 멕시코가 지난 17일 25년 만에 자유무역협정(FTA) 개편에 합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EU와 멕시코는 두 지역 간 무역에 대한 무관세 품목을 크게 늘리기로 합의했다. EU·멕시코는 이해관계 조정이 되지 않아 지난 9년 동안 협상을 진행하고도 진전된 결과를 내놓지 못했는데,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닥치자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트럼프는 멕시코산(産) 상품에 대해 25%로 관세를 올리겠다고 했고, 유럽을 포함한 다른 국가 수입품에도 10~20% 수준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트럼프가 무역 보복을 예고해온 중국은 일본과 무역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중국 농업부장(장관) 한쥔은 17일 베이징에서 에토 다쿠 일본 농림수산상을 만나 “양국이 농업 분야 협력을 심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2023년 8월 일본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내 오염처리수를 해양 방류하면서 중단된 중국의 일본산(産) 수산물 수입 재개가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는 3월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일본을 방문해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과 회담을 가질 전망이다.
코로나 이후 경제가 가라앉아 고전(苦戰) 중인 중국은 한편으론 트럼프와 정면충돌 대신 대화 확대를 추진하면서 무역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수립할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정 국가부주석을 미 대통령 취임식에 특사로 파견하면서 “미국의 새 정부와 협력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최근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와 시진핑이 취임 후 100일 이내에 정상회담 개최를 검토 중”이라고 18일 보도했다.
트럼프 시대에 맞춘 글로벌 안보의 지각 변동도 시작됐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가 여러 차례 휴전 협상 중재를 시도하고도 실패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트럼프 취임식을 하루 앞두고 전격 휴전했다. 트럼프가 당선 후 “휴전하지 않으면 중동이 불바다가 될 것” “내 취임식 전에 휴전하라”라며 전방위로 압박했는데 ‘마감 시한’에 맞춰 총성이 실제로 멈췄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과 충돌해온 러시아는 중동에서 미국과 대립하는 이란과의 동맹 강화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 취임 사흘 전인 지난 17일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포괄적전략적동반자 조약’에 서명했다. 기존의 안보 협력(무기 공급)을 넘어 무역·금융·산업·에너지 및 과학기술 전반에서 양국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앞으로 트럼프의 외교 정책으로 인해 양국의 고립이 심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상호 밀착을 강화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와 마찬가지로 이란 핵시설 선제공격도 배제하지 않는 고강도 압박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혀 왔다. 러시아의 경우,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앞으로도 러시아가 지배하되 전쟁을 끝내는 방향의 ‘평화 협상’을 추진하면서 트럼프를 ‘지렛대’로 삼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도 미국의 직접적 이익이 걸린 북극해 및 중동 문제와 관련해선 트럼프와 충돌이 격해질 수 있다고 예상하고 대비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한편 트럼프의 취임 전 ‘엄포’만으로 국가 정상이 바뀌게 된 캐나다는 본격적인 차기 총리 선거 절차에 착수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트럼프의 관세 인상 및 미국·캐나다 합병 압박에 부실하게 대응했다는 거센 비난을 받아 지난 6일 사임을 발표했다. 조만간 치러질 캐나다 총선의 최대 화두는 ‘트럼프 귀환’으로 굳어졌다. 17일 공식 출마를 선언한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재무장관은 지역 언론인 토론토스타에 “캐나다는 중국·일본·영국·프랑스를 합친 것보다 큰 미국의 최대 수출 시장”이라며 “(관세 인상을) 지금처럼 밀어붙인다면 미국 경제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맞대응을 예고했다.
캐나다의 또 다른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마크 카니 전 캐나다·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정치와는 인연이 없는 인물인데도 트럼프의 ‘관세 폭탄’으로부터 캐나다를 지킬 경제 전문가로 평가되면서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16일 출마 선언을 하면서 “캐나다의 좋은 시절은 끝났다. 우리 시대는 절대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2기에 맞닥뜨린 캐나다의 위기 극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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