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이 열리는 의회 의사당 중앙홀(로툰다)에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가 8년 만에 복귀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고 싶어 수십 년 만에 큰마음 먹고 수도 워싱턴을 찾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거친 언사를 우려하지만 한국 같은 동맹에는 매우 친절할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47대 대통령 취임식을 사흘 앞둔 18일. 직선거리로 1490㎞ 떨어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올라왔다는 스티븐·메리엄 부부가 공화당의 상징색인 빨강 스웨터를 맞춰 입고 이렇게 말했다.

이날 백악관에서 북서쪽으로 약 1㎞ 떨어진 호텔은 취임식 참석을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트럼프 지지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호텔은 1200여 실로 워싱턴 DC 중심 업무 지구 일대에선 가장 규모가 크지만 취임식을 앞두고 수요가 폭증하며 1박에 200~300달러 하던 가격이 1500달러(약 220만원)까지 오른 상태다. 호텔 관계자는 “전날부터 공화당 플로리다 지부에서 대거 올라와 사실상 만실(滿室)인 상태”라며 “취임식 다음 날까지 파티, 결의 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고 했다.

18일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 스티븐·메리엄 부부.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18일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공화당원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 대상 행사가 열리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8년 만에 다시 열리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을 가까이서 지켜보려는 지지자들이 앞다퉈 워싱턴 DC로 몰려오고 있다. 호텔 분석 기관인 STR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호텔 예약률이 전년의 41%보다 34%포인트 오른 75%였다. 일부 호텔은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구호) 지지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뉴욕에서 330㎞ 떨어진 워싱턴 DC까지 헬리콥터 왕복 운송을 제공하고, 고급 차량을 매일 제공하는 7만달러짜리 ‘국가원수 패키지’도 내놓았다.

트럼프 시대에 맞춰 변신하는 식당도 등장했다. 백악관과 의회 의사당을 잇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의 한 음식점은 최근 닭고기 요리 이름을 ‘부통령의 그릇’에서 ‘헤리티지(heritage·유산)의 그릇’으로 바꿨다. 4년 전 인도계 모친과 자메이카계 부친을 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등장에 영감을 받아 만든 닭고기 요리였지만,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패배한 해리스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물러나게 되면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백악관 주인이 바뀌는 20일을 앞두고 새로운 정부 인사들을 단골로 맞이할 백악관 근처 식당들이 이들을 맞이할 준비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이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 내각 - 18일 미국 워싱턴 DC 국립미술관에 모인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내각 구성원들. 현재 진행 중인 의회 인사청문회와 표결을 거쳐 앞으로 4년 동안 미국과 세계에 영향을 미칠 트럼프 정책들의 실행을 담당하게 된다. ①비벡 라마스와미 정부효율부 공동수장 ②엘리스 스터파닉 주유엔 대사 ③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장 ④로리 차베스-드레머 노동 장관 ⑤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 ⑥피트 헤그세스 국방 장관 ⑦더그 버검 내무 장관 ⑧브룩 롤린스 농무 장관 ⑨마코 루비오 국무 장관 ⑩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 장관 ⑪스콧 터너 주택도시개발 장관 ⑫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⑬숀 더피 교통 장관 ⑭린다 맥맨 교육 장관 ⑮ 리 젤딘 환경보호청장 16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 장관 17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 장관 18 더그 콜린스 보훈 장관 19 켈리 뢰플러 중소기업청장 20 스콧 베센트 재무 장관 21 스티븐 미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22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 23 폴 앳킨스 증권거래위원장 24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장 25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팸 본디 법무 장관과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 공동수장은 사진에 없다. /AP 연합뉴스

워싱턴 DC는 지난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득표율이 90%가 넘었을 정도로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다. 하지만 18일 도심에선 ‘트럼프’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힌 모자를 쓰고 있는 가족 단위 관광객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백악관 인근의 한 기념품 가게는 아예 간판 대신 ‘취임식 가게(THE INAUGURATION STORE)’란 현수막을 달아놓고 트럼프 대형 사진과 함께 모자·티셔츠·배지·타월 같은 상품을 갖춰 놓고 있었다. 테네시주에서 온 캐시 거젤씨는 “날씨 때문에 장소가 변경돼 취임식에 참석하기 어렵게 됐지만 취임을 축하할 수 있는 여러 이벤트가 있어 기쁘고 기대된다”고 했다.

18일 워싱턴DC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기념품 가게를 지지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18일 워싱턴DC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기념품 가게를 지지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이날 반(反)트럼프 집회도 열렸지만 2017년에 비해서는 동력이 크게 떨어진 모습이었다. 민주주의와 낙태권, 성소수자 권익, 팔레스타인 독립, 기후변화 대응 등을 주장하는 진보 성향 단체들이 백악관 뒤쪽의 공원에서 주제별로 집회를 연 뒤 링컨 기념관에서 합동 시위를 벌였다. 8년 전과 같이 ‘국민 행진’이란 이름의 단체가 주도했는데 ‘우리는 범죄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중범죄자 대통령’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주최 측이 공원 관리 당국에 신고한 참석 인원은 약 5만명으로, AP는 “8년 전 참석 인원(약 50만명)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트럼프는 2021년 1월 백악관을 떠난 지 4년 만의 금의환향을 위해 이날 오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워싱턴 DC로 향하는 공군기에 탑승했다. 이어 버지니아주 스털링에 있는 자신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후원자와 지인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리셉션 및 불꽃놀이 행사를 했다. 트럼프 취임을 알리는 첫 번째 행사다. 이 행사에서 엘비스 프레슬리 모창 가수인 레오 데이즈가 트럼프와 배우자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부부를 위해 노래했고, 20일 취임식에서 국가를 부를 오페라 가수 크리스토퍼 마치오도 공연을 했다.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은 이날 저녁 국립 미술관에서 만찬을 주재했다.

트럼프는 19일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할 예정이다. 이어 2만석 규모 실내 경기장인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열리는 지지자 모임인 ‘매가 승리 집회’에 참석한다. 트럼프 2기의 새로운 실세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트럼프 유세곡인 ‘YMCA’를 부른 남성 디스코 그룹 빌리지피플, 그의 열성 지지자인 프로레슬링 선수 헐크 호건 등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트럼프는 취임식 당일인 20일엔 성공회 교회 예배, 취임식과 취임 선서, 조 바이든 대통령 환송 행사, 상·하원 합동 오찬, 주요 무도회 방문 등의 일정을 차례로 소화하며 임기 첫날을 보낸다.

취임식이 실내 행사로 바뀌면서 가까이서 트럼프 취임 현장을 지켜볼 수 있는 인원은 대폭 축소됐다. 취임식이 열리는 의사당 원형 중앙홀(로툰다)은 지름 29m, 높이 55m로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600~7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장소 변경으로 현장 참석이 어려워진 이들은 전날 지지자 모임이 열린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취임식 중계를 지켜보게 된다. 혹한의 날씨 때문에 의회에서 백악관까지 행진하는 카퍼레이드가 취소돼 트럼프 이를 대신해 경기장을 찾아 지지자들에게 인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졌다.

1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하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승리 집회가 열리는 워싱턴DC의 캐피털 원 아레나 경기장 주변에 철제 펜스가 설치돼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