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백악관에서 AI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연방 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서명한 ‘출생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었다. 출생 시민권은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미국 국적을 부여하는 제도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부터 이 제도가 불법 체류자의 자녀에게는 적용되지 않도록 행정명령을 발동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출생 시민권 제한은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사안이라서, 행정명령 발동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23일 미 언론에 따르면 시애틀 연방 법원의 존 코에너 판사는 워싱턴·애리조나·일리노이·오리건주가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이 행정명령은 명백히 위헌적”이라며 그 효력을 14일간 차단한다고 밝혔다. 코에너 판사는 “40년 넘게 판사직을 수행해오는 동안 이렇게 명백히 위헌적인 사례가 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코에너 판사는 다음 달 5일 이 행정명령의 시행을 추가로 막을지에 대한 심리를 계속하기로 했다.

트럼프의 출생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대해서는 미 전역의 22주와 이민자 권리 단체 등이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시애틀 연방 법원의 결정은 이 중 처음 열린 재판에서 나온 것으로, 전국적으로 효력을 미친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미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에 귀화한 모든 사람은 미국과 그 거주하는 주의 시민’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불법 체류자의 자녀에 대해서만 출생 시민권을 제한하겠다는 트럼프의 대선 공약은 꾸준히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22년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의 자녀로 태어난 시민권자는 25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