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역 수장’이 될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후보자는 6일 “우리가 미국의 이익에 더 부합하도록 국제무역 시스템을 재구성할 수 있는 비교적 짧은 시간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며 속도감 있는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을 예고했다. 그리어는 트럼프의 ‘무역 책사’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USTR대표의 수제자(protégé)격인 인물이다. 트럼프가 취임과 동시에 무역 정책 전반 점검을 지시한 가운데, 그리어가 한미FTA(자유무역협정)와와 플랫폼법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있어 1기 때와 같은 통상 마찰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
그리어는 이날 상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은 ‘생산자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며 “미국인은 국내·해외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내는 좋은 급여의 일자리를 가질 기회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강한 제조업 기반과 혁신 경제를 가지지 않는다면 충돌을 억지하고 미국인을 보호할 ‘하드파워(hard power)’를 거의 갖지 못할 것”이라며 관세 등을 무기로 미국의 제조업 역량을 복원할 것이란 뜻을 분명히했다. 그리어는 이날 ‘국제무역 시스템의 재구성’을 언급하며 “1기 때와 같은 적극적인 무역정책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무역 질서 재편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USTR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통상 교섭, 무역 정책 수립·집행 등을 총괄한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디지털 플랫폼 기업 규제법인 ‘플랫폼법’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현재는 입법 동력이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지만, 그리어는 그리어는 “그들은 우리를 차별할 수 없고 용납되지 않을 것” “해당 법이 중국 기업은 놔두고 애플·구글·아마존·메타 같은 미국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굴지의 로펌인 ‘스카든·아프스·슬레이트·미거&플롬’ 등에서 통상·국제 무역 담당 변호사로 일한 그리어는 지난해 5월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당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플랫폼 규제에 대해 “미국은 한국과 여전히 잘 지내겠지만 필요한 조치는 취할 것” “미국이 막대한 무역 적자를 감수했는데 반대 급부로 받아드는 것이 플랫폼 회사들에 대한 가혹한 차별이라면 이건 끔찍한 그림”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취임 직후 외국과의 ‘불공정’ 무역 관행, 기존 무역 협정 재검토 지시를 내린 가운데 그리어가 한미FTA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점도 한국으로서는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그는 본지에 “수년간 무역 적자가 지속된다는 건 불공정 거래 관행, 과잉 생산, 보조금, 비시장적 행위, 환율 조작 등 여러 구조적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라며 “모든 무역 협정은 미국인의 필요에 맞게 재단(tailored)돼야 한다”고 했다. 그리어는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간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실제로 트럼프는 이웃 국가인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 직전까지 갔다가 이를 한 달 간 유예했다. 외교 소식통은 “아직 인준을 받지 못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 역시 한미 무역 불균형에 대한 문제의식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