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워싱턴 DC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조찬 기도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워싱턴 DC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조찬 기도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하나님이 없었다면 미국 역사도 없었을 것”이라며 “반(反)기독교적 편견과 차별을 박멸해 미국을 하나님 아래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종교자유위원회를 신설하고 백악관에서 트럼프 가족의 예배를 인도한 폴라 화이트 목사가 이끄는 신앙실(faith office)을 설치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반기독교 폭력 행위를 철저하게 기소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법무부에 마련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트럼프는 이날 워싱턴 DC 연방 의회에서 열린 국가기도회에서 “안타깝게도 최근 몇 년간 신성한 종교의 자유가 전례 없이 위협받는 것을 목격했다”면서 이런 조치를 소개했다. 이어 한 참석자가 낙태 시술 클리닉 앞에서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면서 “지난 정부는 모호한 법을 기독교인을 향해 선택적으로 무기처럼 사용했다”고 했다. 취임 직후 자신이 낙태 반대 시위를 이유로 처벌받은 인사들을 사면한 사실도 언급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두 차례 암살 위기를 모면한 일을 언급하며 “나를 살린 것은 하나님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 일로 뭔가가 바뀌었다.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그것에 대해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J D 밴스 부통령도 이날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종교를 존중하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를 구별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트럼프 2기 정부는 종교 박해에 맞서 싸워 종교의 자유를 더욱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트럼프의 발언은 자신의 핵심 지지층인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는 국교(國敎) 설립을 금지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미국 인구 중 기독교인 비율은 66%(2023년 미국공공종교연구소 조사)에 달한다. 트럼프는 집권 1기에도 “성탄절 인사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다시 사용하겠다”고 했었다. 비(非)기독교인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해피 홀리데이스’를 사용하자는 움직임에 대해 거부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최근 미국에선 ‘예수의 탄생(성탄)을 축하한다’는 뜻의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연휴를 즐겁게 보내라’는 중립적 의미의 해피 홀리데이스를 쓰자는 주장이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트럼프는 전임 조 바이든 정부가 중시했던 이른바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지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PC)’을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역차별과 소외감을 호소하던 보수 성향 백인 지지자들이 호응하고 있다. 트럼프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사람의 여성 스포츠 출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다음 날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는 출생 시 성별이 여성으로 분류된 학생 선수만 여성 스포츠에 출전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한국계 생도들이 주도하는 ‘한미관계 세미나’ 등 성별·인종·민족을 주제로 하는 클럽 12곳이 문을 닫게 됐다.

흑인과 관련된 언행이 자주 ‘인종차별’로 몰리던 일도 보기 힘들어졌다. 트럼프는 지난 2일 흑인인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지목해 “특정 계층(백인)을 매우 나쁘게 대우하는 토지 수용 정책을 펴고 있다”며 “미국의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오는 20일 남아공에서 열리는 G20(20국) 외교장관 회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미 프로풋볼리그(NFL)는 9일 열릴 챔피언 결정전 수퍼볼 경기장 엔드존(터치다운이 인정되는 지역)에 설치됐던 ‘인종차별을 끝내자’ 슬로건을 바꾸기로 했다. NFL은 미국의 프로 스포츠 중에서도 흑인 선수 비율이 높고 DEI 정책을 가장 잘 실현한 종목이란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2021년 이후 4년 만에 슬로건을 교체하는 결정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수퍼볼 경기장을 찾는 트럼프를 의식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