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終戰) 협상 개시에 합의한 가운데,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모스크바에 아주 좋은 날이었다”며 “러시아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 보드카를 병째로 마시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미·러 대화 재개를 선언하며 우크라이나가 요구해 온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2014년 크림반도 침공 이전 영토 수복에 선을 그었는데 이게 러시아에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얘기다. 볼턴은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지만 이견 차로 그만뒀고, 최근 트럼프는 볼턴의 기밀 정보 접근 권한을 박탈하고 경호 인력 서비스도 중단시켰다.
볼턴은 12일 CNN에 출연해 “미·러 회담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푸틴에게 효과적으로 항복했다’고 했다. 이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벨기에 브뤼셀을 찾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영토 완전 수복을 ‘허황된 목표’라 표현했는데 “크렘린에서 작성됐을 수도 있는 합의 조건을 구성할 것”이라고도 했다. 논란이 일자 헤그세스는 13일 나토 국방장관회의에서는 “모든 옵션이 협상 테이블 위에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트럼프는 다음 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우크라이나를 포함하는 3자 고위급 협상이 이뤄질 것임을 예고했다.
볼턴은 “트럼프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주권, 영토 보전 등을 포함하는 미국의 여러 외교 정책 입장을 뒤집었다”며 “푸틴은 일련의 승리를 거두었고,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수 있다는 생각도 끝난 것 같다”고 했다. 푸틴은 나토가 회원국을 늘리며 동진(東進)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볼턴은 러시아가 최근 마약 혐의로 수감돼 있던 미국인 교사 마크 포겔을 석방한 것 관련 “트럼프를 관심의 중심으로 만드는, 푸틴의 아첨 캠페인에 트럼프가 희생양이 됐다”며 “푸틴은 KGB(국가보안위원회) 요원으로 작전을 조종했던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는 트럼프가 푸틴에 이용당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볼턴은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는 데 실패한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에 유리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의) 항복은 트럼프가 서명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12일 상원 인준을 받은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러시아 옹호 전력을 언급하며 “동맹국들이 미국에 정보를 전달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게 만드는, 국가 안보에 해로운 존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푸틴과 직접 대화에 나서면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에서는 ‘패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가 푸틴과 먼저 대화한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