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좌하는 외교·안보 라인 핵심 인사들이 3년 전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며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스티븐 위트코프 백악관 중동 특사는 23일 CNN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는 “꼭 러시아가 전쟁을 유발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논의가 “러시아에 위협이 됐다”고 했다. 정작 나토에 가입도 하지 못하고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에도 전쟁 발발의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이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같은 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인정할 수 있냐’는 질문에 직접 ‘그렇다’ ‘아니다’ 식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대신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중국 국가주석) 등과 같은 사람들과 맞붙는다면 누구와 함께하고 싶으냐. 조 바이든(전 미 대통령)이냐, 트럼프냐”라고 했다. 왈츠는 “트럼프는 최고의 협상가”라며 “우리가 현재 위치에 있는 것은 그의 힘 덕분”이라고 했다. 앞서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에 항전하는 우크라이나를 군사·재정적으로 지원했던 것과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인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러시아 책임 언급을 비껴가는 발언에 가세했다. 그는 폭스뉴스에서 ‘트럼프 정부가 러시아의 침공 인정을 주저한다’는 지적에 “‘당신은 나쁘고 독재자다’ ‘당신이 침공했다’고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생산적이지 않다”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불필요한 방식으로 끌려가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어느 때보다 평화에 가까워졌다”고 했다. ‘3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라는 지적에도 “매우 복잡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최근 트럼프가 푸틴과의 종전 협상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경색됐던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국이 배제된 데 반발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 등으로 부르며 폄하했다. 또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미국 몫을 확보하겠다며 우크라이나 광물에 대한 지분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가 특유의 협상과 거래 스타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 하면서 측근들이 나서서 이번 전쟁의 서사를 트럼프 관점에서 다시 써내려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전쟁이 러시아의 일방적 침공에서 비롯했다는 ‘팩트’를 언급하기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 변경 시도는 ‘한 주권 국가가 다른 주권 국가를 무력으로 침공할 수 없다’는 전후 세계 질서의 기본 명제를 흔드는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사력을 팽창시키며 세계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중국·북한 등에 잘못된 신호를 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미국은 전쟁 3주년 유엔 결의안에 러시아의 ‘침공(aggression)’이란 표현을 넣는 데 반대하며 유럽과 갈등했다. 푸틴을 자극해 트럼프가 주도하는 종전 담판에 걸림돌이 될까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트럼프는 취임 후 세계보건기구와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선언했고, 최근에는 G20(20국) 외교·재무장관 회의에 불참하는 등 기존 국제정치의 틀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이크 리 공화당 상원의원은 23일 미국의 유엔 탈퇴를 요구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의 접근법이 한국 등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에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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