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와 저는 의회 인턴으로 처음 만났어요. 그는 나의 친구이자 멘토이자 신뢰할 수 있는 보좌관이었습니다.”
지난 10일 하원에서 빈스 퐁 의원이 발언을 신청해 연단 위에 올랐다. 캘리포니아주(州)가 지역구인 퐁은 “저는 오늘 제 수석 보좌관인 제임스 민(James Min)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입을 열었다. 1999년 의회에 들어와 20년 넘게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등 주요 의원을 보좌한 민씨의 경력을 읊으며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나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뒤이어 노스캐롤라이나가 지역구인 버지니아 폭스 의원도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어 1분 동안 연설했다. 폭스는 “25년 간의 놀라운 봉사 끝에 하원을 떠나는 제임스 민을 인정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수많은 캘리포니아 주민을 위해 하원에서 일한 그의 확고한 헌신은 매우 존경할 만하며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우리 의회와 이 세계에는 제임스 민과 같은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며 “이 위대한 기관에 오랜 세월 봉사하고 우정을 나눠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 새로운 장을 시작하는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계속 그에게 축복을 내리시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폭스가 발언할 땐 중간에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조지아의 브라이언 잭 의원은 “제임스 민은 항상 자신보다 남들을 우선 순위에 두는 사람”이라며 “워싱턴 DC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그로부터 조언을 들어 성공적인 커리어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잭은 “중요한 인생이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라는 전설의 흑인 야구 선수 재키 로빈슨(1919~1972)의 명언을 인용하며 “제임스 민은 이 정신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날 의원들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사람은 25년 근무를 마치고 민간으로 이직하는 한국계 보좌관 제임스 민씨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민씨는 스탠퍼드대에서 생물학을 공부했고, 조지타운대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학위(J.D.)를 받았다. 1999년 8월 하원 세입·세출위원장실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25년을 하원에 몸담은 베테랑 보좌관이었다. 특히 2007~2023년 수석보좌관으로 매카시를 보좌했는데 이 기간 매카시는 원내 총무, 하원 다수당 대표, 연방 의전 서열 3위인 하원의장까지 승승장구했다. 이런 이유로 민씨는 “매카시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직원”(CQ 롤콜)이란 평가를 받았다. 민씨는 ‘밀러 스트래티지스’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자리를 옮겨 커리어의 2막을 열게 된다. 트럼프가 재집권한 현재 워싱턴 DC에서 가장 잘나가는 로비·전략 컨설팅 회사 중 하나다.
국회의원이 인사 등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 정책뿐만 아니라 민원 등 잡다한 업무를 챙겨야 해 보좌관들이 ‘파리 목숨’ 소리를 듣는 한국과 달리 미 의회에선 보좌관이 갖는 전문성을 인정하는 편이다. 의원 연봉이 상·하원 모두 17만4000달러(약 2억5300만원)로 15년째 동결돼 있어, 더 많은 월급을 받아 가는 보좌관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2023년 기준 보좌관 10명 중 1명은 자신이 모시는 의원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의원실 내 업무 분장이 명확한 편이라 지역구 활동, 선거 운동, 의원 개인 심부름 등에 차출되는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씨 같은 베테랑이 의회를 떠날 때는 의원들이 공개 발언을 통해 그간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