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행정명령으로 미국의소리(VOA)·자유유럽방송(RFE)·자유아시아방송(RFA) 등을 관할하는 글로벌미디어국을 해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대폭 축소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뒤 이 방송들이 전면 중단됐다. 오랫동안 북한을 비롯해 중국·러시아·미얀마 등 독재 정권 치하 국민들에게 그곳 언어로 자국과 세계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려주고 민주주의 메시지를 전파해온 방송들이다. 19일 본지와 전화로 만난 스티븐 허먼 VOA 국장과 테드 리피엔 전 RFE 대표는 모두 “권위주의 진영 독재자들이 이 상황을 기뻐하고 즐기고 있을 것”이라며 방송 재개 필요성을 강조했다.

스티븐 허먼 VOA 국장

30년 가까이 VOA에서 일한 베테랑으로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 백악관을 출입했던 스티븐 허먼 국장은 2010~2013년 서울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외신기자클럽 회장을 지낸 지한파(知韓派)다. 그는 앞서 트럼프가 미국 대외 원조 기관 국제개발처 폐쇄에 나서자 이를 비판하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직무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는 “북한 군인들도 듣는다는 VOA가 문을 닫는다니 김정은이 지금 파티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 갑작스러운 휴직·해고 통보 이후 동료들의 반응은.

“새 일자리를 찾는 이도 있고, VOA가 어떤 형태로든 살아나리라고 희망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일관성 있게 (권위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도한 VOA는 오랜 기간 평양·베이징·모스크바의 골칫거리였다. 그런데 (2차 대전 시기 개국한) 1942년 이후 어둠 속에서 빛났던 등대를 (트럼프가) 다시 어둡게 만들려 한다.”

스티븐 허먼 미국의소리(VOA) 국장. /스티븐 허먼 제공

-VOA와 북한의 관계는.

“VOA의 뉴스는 대부분 TV로 방송된다. 다만 북한은 다르다. 여전히 중파·단파 라디오에 의존한다. 북한 주민 대다수는 인터넷은커녕 TV조차 제대로 시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3년 북한에 열흘간 머문 적이 있는데 당시 북한 군인들로부터 ‘매일 VOA를 듣는다’는 말을 듣고 보람을 느꼈다. 서울에서 만난 탈북민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VOA를 접했을 때 처음에는 미 CIA(중앙정보국)의 선전·선동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들으니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얼마나 억압적인지 종교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 청취자 중 몇몇은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탈출을 결심했다.”

-VOA와 다른 많은 언론사의 차이점은.

“우리는 미국 정부로부터 100% 예산을 지원받으며 미국을 위해 일하지만 정부로부터 간섭받지 않는다. 1976년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이 ‘편집의 독립성은 법으로 보장되며, 기자들은 정부 관리나 정치인들의 영향이나 압박, 보복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내용의 VOA 헌장에 서명했고 이는 의회에서도 통과됐다. VOA는 공정성·균형성이 법적으로 의무화된,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기관이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인가.

“한국엔 5·18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다음 해인 1981년에 처음 갔다. 그때 민주화에 관여한 많은 이들을 만났고, 그들의 용기에 감명받았다.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인 북한 김정은은 항상 (VOA의) 기삿거리가 됐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속도가 가장 빠른 곳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참, 나는 소주보다 막걸리파다, 하하.”

-다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면.

“지금은 (정직 처분으로) 보도를 할 수 없지만 내 직업은 여전히 기자다. 다만 내가 VOA로 돌아가서 일하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상황이 나아지면 (VOA가 아니더라도) 계속 누군가를 위해 보도를 하고 싶다. 아울러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정학에 대한 학술 연구도 많이 하려 한다. 내가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미국의소리(VOA)

VOA는 1942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 독일·일본의 선전에 대응해 방송을 시작, 최근까지 50여 언어로 전 세계 3억명 이상에게 방송을 해왔다. 역시 1942년 시작한 한국어 방송은 광복과 6·25 전쟁 발발 등의 소식을 신속하게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