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미국 워싱턴 DC 아메리칸대 캠퍼스에 있는 벚나무에 꽃이 피어있다. 이 나무는 1943년 4월 8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심은 것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이 나무들은 독특한 이름으로 그 기원(origin)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1943년 4월 8일, 이승만 한국 초대 대통령과 아메리칸대 총장인 폴 F. 더글라스 박사가 한국의 독립과 민주주의 실현을 염원하는 대학 지식인들의 마음을 담아 여기 심었습니다.”

25일 워싱턴 DC 북서부 아메리칸대 국제관계대학(SIS) 건물 앞. 정원 한복판에 우뚝 솟은 15m 높이 나무에는 가지마다 벚꽃이 만발해 있었다. 학교 관계자는 “그래도 절정에 이르려면 주말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무 밑에서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노트북을 펴고 과제를 하거나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로 K팝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춤을 추고 있었다. 나무 밑동 부분에 심어져 있는 표지석을 보면 ‘한국 벚꽃’이라 적혀 있다. 1943년 4월 8일 미국에 망명 중이던 이승만 전 대통령(1875~1965)이 독립의 의지를 담아 심은 벚나무다. 총 네 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는 십몇 년 전 고사(枯死)하고 현재 세 그루가 남아 있다고 한다.

아메리칸대는 1893년 설립된 사립대로 국제관계 부문은 미국에서 손에 꼽힐 만큼 규모가 크다. 세계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 DC와 인접해 있는 게 이 학교의 강점이다. 이 학교 총장을 지낸 폴 프레드릭 더글러스 박사(1904~1988)의 부모가 1900년대 한국에서 선교사를 지냈는데, 이를 계기로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하기 2년 전인 1943년 두 사람이 국제대학원 건물 앞에 제주산 왕벚나무 네 그루를 심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 등 여러 저명 인사가 이 학교에서 수학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국제관계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메리칸대는 한국의 고려대·숙명여대 등과도 교류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25일 미국 워싱턴 DC 아메리칸대 캠퍼스에 있는 벚나무에 꽃이 피어있다. 이 나무는 1943년 4월 8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심은 것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벚나무 식수를 알리는 표지석.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이 전 대통령이 교정(校庭)에 한국산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한 더글러스 박사는 한국의 독립운동과 뗄 수 없는 미국인이다. 1942년 워싱턴 DC의 재미한인전체대표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독립을 지지·인정하는 연설을 했고, 미국을 찾은 독립 우리 운동가들을 공관에 불러 다과를 베풀어 격려했다. 또 미 상·하원 의원들에 서신을 보내 한국의 독립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는 등 워싱턴 조야(朝野)에 친한 여론이 형성되는 데 역할을 했다. 1943년 4월 8일 아메리칸대에선 미국 영부인과 고위 관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24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때 이 전 대통령과 벚나무도 심었다. 더글러스 박사는 1950년 ‘대통령 이승만’으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벚꽃이 명물인 워싱턴 DC에서 이 전 대통령이 ‘벚꽃 투쟁’을 벌인 사실도 기록으로 일부 확인된다. 매년 이맘때면 약 150만명이 벚꽃 축제를 즐기기 위해 워싱턴 DC를 찾는데, 도시 곳곳에 심어진 벚나무들은 1921년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 일본 도쿄 시장이 미·일 우호 상징으로 선물한 쇼메이 요시노 품종의 벚나무 묘묙 3000여 그루가 시초다. 1943년 6월 28일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 내 반일(反日) 감정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존 랭킨 하원의원이 ‘일본 벚꽃’ 이름을 ‘동양 벚꽃’으로 바꾸자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다른 여러 보물처럼 벚꽃도 일본이 한국에서 강탈해 갔다”는 이 전 대통령의 소신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랭킨이 제출한 결의안에는 이 전 대통령이 아메리칸대에 식수(植樹)한 사실도 언급돼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심은 벚나무는 약 1000평 정도 되는 ‘한국 정원(Korea Garden)’에 서 있다. 2011년 조성된 것으로 1990년대 말부터 논의가 있었지만, 외환 위기로 한국 경제가 침체를 겪으면서 한동안 모금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들어 급물살을 탔고 미 농림부 산하 식물과학연구소의 재미 식물학자 등 여러 사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제주특별차치도와 워싱턴 DC의 주미 한국문화원이 돌하르방을 두 쌍 기증했는데, 지금도 벚나무들 사이에 서 있다. 당시 학교 측이 “미국인들은 웃는 인상을 좋아한다”며 ‘웃는 얼굴’의 돌하르방을 제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1991년 이 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은 정몽용 현대성우그룹 회장의 후원을 기념하는 표지석도 정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25일 미국 워싱턴 DC의 한국 정원 입구에 제주도에서 기증한 돌하르방 한 쌍이 서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5일 미국 워싱턴 DC의 아메리칸대 캠퍼스 내 한국정원에 학생들이 모여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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