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 참석해 있는 모습이다. /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행정명령 서명식에 참석해 있는 모습이다. /UPI 연합뉴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 관세 발표를 앞두고 한국을 포함한 교역 상대국 59곳의 무역 장벽을 상술한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NTE 보고서)’를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이는 통상법에 따라 USTR이 매년 3월 31일까지 대통령·의회에 제출하는 정기 보고서다. 하지만 트럼프가 관세·비(非)관세 장벽을 모두 감안해 2일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보고서에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적시된 사안들이 미 정부의 관세율 설정에 실질적 영향을 끼치리라는 전망이 많다. 이는 지난 1월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첫 NTE 보고서이기도 하다.

백악관 "이런 게 불공정" - 지난달 31일 캐럴라인 레빗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상호 관세의 필요성을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들어 보인 자료엔 일본이 미국 쌀에 부과하는 관세율 700%, 캐나다가 버터에 매기는 관세율 298% 등 미국이 ‘불공정 무역’으로 거론해온 사례들이 나열돼 있다. 상호 관세는 보통 자유무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상대국과 비례해 관세를 낮추는 것을 의미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상대국에 같은 수준의 관세로 대응한다는 취지로 이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USTR 보고서는 이날 불공정하거나 그럴 소지가 있는 한국의 무역 정책을 일곱 쪽 분량으로 열거했다. 무기를 수입할 때 외국 계약자에 기술 이전을 요구하거나 외국의 방위 기술이 더 우수한데도 한국 기술·제품을 쓰는 관행 등이 한국의 불공정한 무역 장벽으로 새로 언급됐다. 이 밖에 월령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대한 독과점 규제 추진, 콘텐츠 사업자에 망 사용료를 부과하겠다는 국회 입법 동향, 공공 부문 클라우드 서비스 보안 인증(CSAP) 등이 한국의 비관세 무역 장벽으로 지목됐다. 대부분 한국에 상품·서비스를 수출하는 미국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온 사안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역사상 트럼프보다 수출 기업들이 직면한 광범위하고 유해한 대외 무역 장벽을 더 잘 인식한 사람은 없었다. 대통령의 지도력 아래 우리 정부는 불공정하고 상호주의에 어긋나는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상호 관세 부과 시점에 대해 “어쩌면 내일(4월 1일) 밤 또는 아마 수요일(4월 2일)에 공개된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관세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1930년대 악명 높았던 ‘스무트-홀리 관세’보다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며 전망했다.

그래픽=김성규

◇USTR, 구글·넷플릭스·MS의 숙원 사항들 대부분 담아

USTR이 지난달 31일 NTE 보고서에서 지적한 한국의 비관세 무역 장벽 21건 중 다수는 과거부터 미국이 문제를 제기해 온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2일로 예고한 국가별 상호 관세를 이틀 앞두고 나왔기 때문에 이번 보고서는 의미가 특히 부각되고 있다. 이날 보고서에 언급된 ‘무역 장벽’은 상호 관세뿐 아니라 미 당국자들이 암시해 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개정 등 양자(兩者) 협상에서도 미국의 핵심 요구 사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 장관은 지난달 “우리는 (관세) 기준선을 재설정하고 이후 국가들과 잠재적 양자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밝혀 양자 간 FTA 또한 재협상 대상임을 시사했다.

USTR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국방 절충 교역’ 프로그램을 비관세 무역 장벽으로 새롭게 지목하면서 “한국 정부는 외국 방위 기술보다 국내 기술·제품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했다. ‘절충 교역’은 해외에서 1000만달러(약 147억원) 이상의 무기·군수품·용역 등을 구매할 때 반대급부로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기술 이전, 부품 제작·수출, 군수 지원 등을 받아내는 교역 방식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사례는 담지 않았지만, 미 방산 업체가 한국에 무기를 팔 때 이 지침 때문에 기술 이전 등을 요구받는 게 불공정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보고서는 아울러 전력 분야 투자 제한 조치를 언급하며 “외국인의 원자력 발전소 소유가 금지돼 있다”고 했다. 지난해 보고서는 수력·화력·태양열에 대한 소유 제한 문제만 언급했는데 올해는 원전까지 범위를 넓혔다.

보고서엔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 끈질기게 요구해 온 숙원 사항도 다수 포함됐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는 구글, 망 사용료 부과 움직임은 넷플릭스 등 콘텐츠 플랫폼, 공공 부문 클라우드 서비스 진입 장벽은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아마존 등 미 클라우드 사업자들이 한국 정부에 불만을 제기해 온 문제들이다.

美 상호관세 발표 앞두고… 정부·4대 그룹 총수 ‘경제 안보 전략 회의’ -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 관세 발표를 앞둔 1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4대 그룹 총수가 서울 종로구 총리 공관에서 첫 경제 안보 전략 TF 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선 정부와 기업이 보유한 각각의 역량과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통상 위기에 공동 대응하자는 논의가 이뤄졌다. 왼쪽부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상목(뒷모습)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한 권한대행, 구광모 LG그룹 회장. /뉴시스

USTR 보고서는 올해 처음으로 “한국의 산업부(산업통상자원부)가 반도체·자동차 등 국가 안보 핵심 기술에 대한 해외 반출 가능성을 이유로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사용을 불허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공공 부문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에 시행 중인 보안 인증 제도가 외국 업체에 상당한 장벽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아마존·구글 등은 한국 정부가 약 1조원을 투입해 추진 중인 공공 부문 클라우드 확산 프로젝트에 참여할 방법을 타진 중인데, 한국의 보안 인증 제도가 외국 기업을 막는 무역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미 정부가 판단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 법안도 문제로 삼으며 “다수의 미국 대기업엔 적용되지만, 주요 한국 기업과 (중국 등) 다른 국가의 기업은 제외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2008년 한미 간 소고기 시장 개방 합의 때 한국이 월령 30개월 미만 소에서 나온 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을 ‘과도기적 조치’라 표현하며 “16년간 유지됐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월령에 관계없이 미국산 육포·소시지 등의 수입을 금지하는 사실도 거론했다. 이와 함께 “미국 자동차 제조사의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 확대는 여전히 미국의 우선순위”라며 한국의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배출 관련 부품 규제의 투명성 문제에 우려를 제기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USTR 보고서 공개 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하는 무역 상대국의 높은 관세를 차트로 만들어 들어 보였다. 여기엔 캐나다의 미국 버터(298%)·치즈(245%), 일본의 미 소고기(39%)·유제품(40%) 및 쌀(700%) 등의 높은 관세율이 불공정 관세로 적시됐다. 일본은 쌀 산업 보호를 위해 최저 수입 물량(쿼터·77만t)을 정해 놓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700% 넘는 고율 관세를 물리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비난한 것이다.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게 수입 쿼터(40만t)를 넘어가는 수입 쌀에 대한 관세율이 매우 높아(513%) 미국이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이런 관세가 미국 제품의 수출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많은 미국인의 기업과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상호 관세가 발표될 수요일(2일)은 우리의 해방일(Liberation Day)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해방일’은 트럼프가 상호 관세 발표일을 지칭하며 써온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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