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9일 오전 9시 37분 소셜미디어에 “지금은 매수하기 좋은 시기! DJT”라는 글을 올렸다. 앞서 이날 0시 1분, 트럼프가 57국에 부과한 상호 관세 폭탄이 발효하면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한 때였다. ‘DJT’는 트럼프 이름의 약자이면서 나스닥에 상장된 ‘트럼프 미디어 & 테크놀로지 그룹’의 종목 코드다. 약 3시간 뒤 트럼프는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뉴욕 주식시장이 급등했다. 관세 유예 전 자기 회사 주식을 매수하라고 지침을 준 셈이어서, 미국에선 시장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견제와 균형을 갖춘, 자유민주주의 ‘모범국’으로 여겨졌던 미국에서 대통령이 이토록 독단적 권한을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이가 많다. 어떻게 된 일인지, 5문답으로 풀어봤다.
◇ Q1. 대통령 관세 권력, 얼마나 큰가
트럼프는 관세 부과와 유예 모두 행정명령이란 수단을 통해 맘대로 결정하고 있다. 행정명령은 정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 쓰도록 한 미 헌법상 정책 수단이다. 대통령이 서명만 하면 발효된다. 트럼프는 미국이 무역 적자 등으로 ‘비상사태’에 빠져 있다며 행정명령을 통해 교역국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가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조치는 의회 승인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참모들과의 논의도 거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관세 정책을 주도해야 할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트럼프의 9일 상호 관세 유예 조치를 몰랐다가, 의회 청문회 도중 뉴스로 알아 비웃음을 샀다.
◇ Q2. 대통령 맘대로 관세를 바꾸는 근거는
미 헌법엔 관세를 포함한 세금 부과 권한이 의회에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에선 대통령에게 특정 국가·품목에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한 법이 적지 않고, 트럼프는 이를 ‘무소불위 관세’의 근거로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다. 예를 들어 지난 2일 상호 관세 명령에 서명할 때는 “1977년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1976년 국가비상법(NEA), 1974년 무역법 604조 등에 따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비상사태나 불공정 무역이 발생할 때 대통령 권한을 명시한 법들이다. 다자간 자유무역 시대가 열린 1990년대 이 법들은 거의 사문화됐으나, 트럼프는 창고에 있던 법들을 꺼내 들고 있다. 트럼프는 아울러 ‘상대국의 무역 장벽에 상응하는 관세’를 뜻하는 상호 관세를 부과하면서 1934년 제정된 상호무역협정법도 근거로 활용했다고 알려졌다.
◇ Q3. 관세 권한을 강화한 법, 왜 이리 많은가
무역 정책사(史) 권위자인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공격받는 자유무역’에는 미국 관세 권력이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옮아간 배경이 나온다. 미국도 과거엔 의회가 관세를 주도했다. 그런데 대공황 직전인 1928년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허버트 후버 후보(대통령 당선)가 미 농민들을 위해 수입 농산물 관세를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에 지역구 ‘표심’을 신경 쓰던 의회 의원들도 관세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의원들이 지역구를 위한 품목 관세 인상을 경쟁적으로 추진했다. 민주·공화당 의원이 서로의 법안을 밀어주기까지 하면서 관세 인상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이런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1930년 수입품 2만종에 평균 59%, 최대 400% 관세를 매긴 ‘스무트 홀리 관세법’이다. 이 법은 전 세계 보복 관세를 일으켜 대공황을 악화시켰다.
지역구 의원들의 무분별한 품목 관세 인상에 제동을 걸자는 취지로 1934년 의회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스무트 홀리 관세법은 폐지하고, 상호무역협정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관세 권한을 행정부(대통령)에 위임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루스벨트는 상대국 관세에 맞춰 관세를 낮췄고 10년 사이 관세율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상호무역협정법은 관세를 내리기 위해 관세에 대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려 한 것이었지만, 트럼프는 반대로 관세를 올리는 데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 Q4. 제동을 걸 장치는 없나
트럼프는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뒤, 그에 따른 비상 권한을 근거로 관세 명령을 내리고 있어 현행법상으로는 의회가 통제할 장치가 마땅치 않다. 최근 미 의회는 야당인 민주당 주도로 대통령의 새로운 관세를 의회가 승인하지 않으면 폐기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현재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이라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 일부 기업 등이 트럼프 관세 명령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트럼프는 최근 법원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 Q5. 한국은 어떤가
원칙적으로 한국에서 관세는 국회가 최종 승인 권한을 갖는다. 다만 한국도 ‘보복 관세’가 필요한 경우 대통령이 국회 승인 없이 부과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한국은 그동안 WTO(세계무역기구) 규범을 지키면서 보복 관세를 자제해 왔기 때문에 현재까지 적용된 사례는 없다. 한국 정부는 2013년 미국 정부가 한국산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을 때도 곧바로 보복하지 않고 WTO에 제소해 2016년 승소했다. 한국은 승소로 연간 최대 8481만달러의 보복 관세를 물릴 권리를 얻었지만, 이것도 행사하지 않았다.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RTAA
대공황 초기였던 1930년, 미 의회는 수입품 약 2만종에 40~6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했다. 경제난 타개가 목적이었지만, 주요 교역국의 보복 관세를 초래해 대공황을 악화시켰다. 의회는 이 법의 실패를 반성하며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RTAA)을 제정, 대통령이 각국과 관세 인하 협정을 맺을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했다. 이는 WTO 자유무역 체제의 기반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