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26일 바티칸에서 단둘이 만났다. 지난 2월 미 워싱턴 DC 백악관 정상회담이 파행한 지 약 2개월 만이다. 두 정상은 이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가 열리기 전,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의 대리석 바닥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 15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배경으로 한 채였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젤렌스키가 휴전 협상 타결을 위해 러시아를 압박해달라고 요청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젤렌스키는 만남 이후 “좋은 회동이었고 우리는 많은 것을 일대일로 논의했다”며 “공통된 성과를 거둔다면 역사적인 만남이 될 수 있는 아주 상징적인 회동이었다”고 했다.
트럼프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푸틴은 지난 며칠간 (우크라이나의) 민간 지역, 도시, 마을에 미사일을 쏠 이유가 없었다”며 “아마도 그는 전쟁을 중단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트럼프는 또 금융 등 2차 제재를 언급하며 “(푸틴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트럼프의 발언은 전날까지만 해도 “합의에 매우 근접했다” “협상을 끝내야 한다”며 사실상 러시아 편을 들며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던 입장에서 급선회한 것으로 해석됐다. 미국은 최근까지도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인정, 나토 가입 포기 등 휴전안을 받아들이라고 했고, 젤렌스키는 “절대 그럴 수 없다”며 반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교황의 장례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며 “트럼프는 푸틴이 종전을 원치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가디언은 대성당 내에서 성화(聖畵)를 배경으로 의자 두 개만 놓고 대화하는 두 정상의 모습에 대해 “극적이었다”며 “깨달음에 적합한 순간이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가디언은 “당연히 이 모든 것은 허사가 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악명 높게 변덕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