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지켜보면서 인간의 마음이 참으로 모순되고, 불완전하며,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평생 법과 사법 절차를 따지며 살아온 엘리트 법조인 출신 대통령. 불과 몇 년 전 현직 대통령 최측근 실세의 자식 특혜 비리를 정의롭게 처리한 덕분에 대통령까지 오른 이가 어떻게 사법 시스템과 민심을 무시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가 던진 비상계엄 카드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되는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시절 전두환 대통령도 실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37년 전인 1987년 6월 중순은 폭풍 전야였다. 6.10 항쟁을 계기로 전국이 준(準) 소요 사태로 접어들자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으로 돌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비상계엄은 대통령 지시 한마디로 발동되는 것이 아니다. 전국에 비상계엄사령부가 설치돼야 하며 가용병력을 차출-배치-이동시키는 대규모 작전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계획이 6월19일 육군참모총장 발 작전명령 87-4호로 하달되자, 군 지휘부는 대경실색했다. 대부분이 전 대통령에 충성하는 하나회 출신들이지만 그들은 군이 출동하면 내전 상태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가장 앞장서야 할 특전사령관이 육사 동기생 보안사령관(현 방첩사령관)을 통해 ‘불가(不可)’ 입장을 대통령께 전달했다.
“지금 군이 나서면 7년 전 광주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유혈 충돌과 내란 사태가 초래될 것이며 대한민국이 문을 닫을 수 있다.”
특전사령관은 만약 대통령이 건의를 무시하면 오히려 휘하 707대 대대(이번에 국회에 투입된 제707특수임무단의 전신)로 청와대를 점령할 계획까지 세우고, 대대장을 청와대로 보내 정찰을 시키는 등 도상연습도 마쳤다. 실패할 경우 총살이나 자결도 각오했다.
707대대는 1981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 창설된 특전사 최정예 부대로,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에 발생할지 모르는 북한의 테러에 대비, 미국의 델타 포스(Delta Force, 대테러특수임무부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전 대통령은 군 출동 재고 요청을 묵묵히 전해 들었다. 이후 염려하던 군 출동은 이뤄지지 않았고 며칠 뒤 ‘6.29 선언’이 나왔다. (구체적인 내용은 당시 관여했던 군 장성들이 27년 뒤인 2014년 진술로 확인된 실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그런 특전사와 707부대 병력을 국방장관 전화 한통으로 앞세워 전국을 계엄통치하에 두려고 했다. 과연 온전한 정신이었을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로 뇌과학자들은 대뇌피질을 지목한다. 다른 동물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창조적이고 조직적이며 모든 신경을 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약점도 있다. 엄청난 충격을 받거나, 스트레스가 반복·누적된다면 그 시스템이 흐트러져 심각한 ‘판단 오류’가 발생한다. 전혀 이해못할 비정상적 행동을 보이거나 자살을 선택하거나, 극심한 신경정신질환 속에 빠지는 것이다.
아마 윤 대통령이 그런 상황인 것 같다. 극도의 분노·두려움·불안·공포 속에서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국가 존망의 위기로, 그 대상을 야당을 비롯 반국가세력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의 위기의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면 지금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상황이 더 나빴을 과거, 이 나라를 통치했던 대통령들은 왜 윤석열 같은 ‘자기파괴적’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그들 역시 때로 민심을 속이거나 억압하기도 했지만 용의주도하게 민심을 이용하고, 경청하고, 유도하고, 결집시켜 나갔다. 자신들의 실수가 드러나면 인정도 하고 사과도 했다. 그래서 이 나라가 이렇게 발전했다.
윤대통령과 과거 대통령들과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고난의 경험’이다. 과거 대통령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없는 상황이었으며 살면서 숱한 가시밭길을 헤쳐왔다. 그러나 윤대통령은 유복하게 태어나, 평생 대접받는 지위에서 살았고, 누구보다 쉽게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어쩌면 그는 복잡한 세상의 이치도, 변화무쌍한 인간의 심리, 심지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모를 수 있다.
고난의 경험이 적은 사람들의 특징이 참을성이 부족하고 겸손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즉 인간적 성숙이 되지 못했다. 그것은 머리나 스팩, 물려받아 되는 것이 아니다. 수영을 잘하려면 물속에 들어가 익혀야 하듯이 스스로 체험하고 단련해서 익혀야 한다. 훌륭한 유산을 남겨준 동서고금 위인들은 일생에 예외없이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