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한강을 건너며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본다. 늘 빌딩 숲과 사무실, 부정적 뉴스에 갇혀 있던 시야가 확 트이면서 마음도 함께 열린다.

눈앞의 좁은 현실에서 벗어나 저 멀리 펼쳐진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긴장이 사라진다. 이것은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다. 뇌과학적으로도 좁은 시야(Closed Focus)에서 벗어나 넓은 시야(Open Focus)를 가질 때, 우리 뇌와 신체는 더 건강하게 반응한다.

홍태선의 건축은 음악처럼 흐른다. 리듬과 조화, 다이내믹이 느껴지는 경기도 한 골프장. /촬영 정동욱, 제공 홍태선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며칠 전 광화문문화포럼(회장 박인자)에서 건축가 홍태선(60·YKH 대표)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좁고 획일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열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홍태선은 15살에 미국으로 이민 가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영어가 서툴렀던 그는 반쯤 벙어리처럼 지내야 했다. 그가 찾은 탈출구는 미술과 음악이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았고, 어려서 배운 피아노 연주로 친구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언어보다 더 강력한 표현 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모님의 권유로 의대를 들어갔지만, 곧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수가 “건축이야말로 과학과 예술을 모두 아우르는 길”이라는 말에 이끌려 하버드 건축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결국 예일대 건축대학원에서 건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무실에서 그랜드피아노로 쇼핑 곡을 연주하는 홍태선. 음악과 와인이 그의 삶의 여백과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해준다. /최정화 랑데부

음악과 건축, 그리고 인생

뉴욕 쌍둥이 빌딩을 설계한 야마사키 건축사무소에서 커리어를 쌓았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환경친화적인 건축을 실현했다. 값비싼 원자재 대신 중고 자재와 자연 친화적 재료를 활용해 독창적인 공간을 창조했다.

콘크리트 거푸집을 그 지역 낙엽송 통나무로 만든 파주 세별 브루어리(Sebyeol Brewery), 주변 경관과 멋진 조화로 유명한 포천힐마루골프장, 미얀마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산 불상들로 웅장하게 꾸민 서울 제기동 법화정사 등등이 그의 작품들이다.

그의 건축은 마치 음악처럼 흐른다. 악보를 읽듯 건축 도면을 읽고, 건물의 탄생은 곡을 연주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그의 건축에는 리듬과 조화, 반복과 역동성, 쉼표와 긴장감이 녹아 있다. 그는 말한다. “건축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각 요소를 조율하는 마술사다”

그의 유려한 건축미는 실용적인 공법과 결합해 미국, 한국, 아시아 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으며 작년에는 건축가 중 3%만 선정되는 미국 건축가협회 명예회원(FAIA)이 되었다.

홍태선은 전형적인 삶의 경로를 따르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직관)에 따라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해 왔다. 면허증과 자격증, 정치적 이념과 지역주의 같은 닫힌 프레임(Closed Focus) 속에서 살지 않고, 열린 시선(Open Focus)으로 세상을 받아들였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웠고, 건축을 위해 프랑스와 유럽 등 세계 100여개국을 여행했다. 음식을 만들고, 와인을 마시며, 피아노로 쇼팽을 연주하며 인생을 즐긴다.

그런 그의 삶은 팔자 좋은 사람의 유희가 아니라, 스스로 개척한 자유로운 인생의 결과였다.

그를 보며 깨닫는다. 인생이란 결국 자기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외부 환경과 남의 시선에 흔들리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삶을 채워갈 것인가.

고급스러운 삶을 살지 않는 우리도 막걸리 한잔과 순대, 트로트와 K팝을 부르며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뇌파연구에 근거한 심리치료 전문가인 미국 레스 페미(Les Fehmi) 박사는 자연을 비롯 광활한 공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뇌에서는 알파파가 증가하고 심신이 이완되며 신경계가 ‘재부팅’된다고 주장한다. /셔터스톡

당신은 지금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가

오늘 한강을 건너며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수면, 도도히 흐르는 강물, 떠다니는 갈매기와 청둥오리,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저 멀리 지는 노을의 황홀한 빛.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우리 마음의 시선이 결정한다. 삶이 지루하거나 힘들게 느껴진다면, 시야를 조금 더 멀리 두어보자.

지금, 당신의 인생은 얼마나 ‘열려’ 있는가?

▶<마음건강 길>에서 더 많은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