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어수선한 시국에 말 통하는 친구들과 맛집에서 한잔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도 상책이다.

어제는 서울 성북동의 한 고즈넉한 밥집을 찾았다. 약선밥과 돌솥밥으로 유명한 곳인데 우리는 먼저 갖은 나물과 화덕 닭고기, 생선구이를 안주 삼아 와인과 막걸리를 즐겼다.

차를 마시려 했던 찻집은 이미 문을 닫았다. 월북 작가 이태준 생가를 개조한 곳인데, 전통한옥 분위기가 너무 좋아 늘 붐비는 곳이다.

대신 성북동 길을 걷다 발견한 세련된 디저트 카페에서 팥빙수와 양갱을 시키고, 우리가 매일 목도하는 혼란한 세상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연령대가 다르니 시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다. 60대인 나는 걱정과 실망 속에서 나라를 보았지만, 동석한 50대 출판인은 “발전적 진통”이라 했고, 30대 청년 사업가는 ‘선진국’ 한국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세상을 해석했다.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한결 나아져 집으로 돌아왔다.

맛집 순례는 스트레스를 풀고, 좋은 인간관계를 쌓으며, 소소한 행복을 찾는 일석삼조의 방법이다. /셔터스톡

어릴 적 ‘맛집’은 없었다. 모든 음식이 맛있었을 뿐

우리 어린 시절엔 맛집이 따로 없었다. 가난했던 시절, 무엇을 먹어도 다 맛있었다. 짜장면, 호떡, 만두, 국수, 분식집….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했던 ‘한일관’ 같은 식당은 꿈의 장소였다.

기자가 된 1980년대, 맛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비싸고 유명한 곳도 다녔지만 골목의 허름한 가게에서 진짜 맛을 발견했다. 고기 맛도 부위와 조리법에 따라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다.

미식의 눈을 뜨게 한 홍콩에서의 날들

진짜 ‘맛집 철학’을 배운 건 ‘맛의 천국’ 홍콩에서 특파원 하던 시절이었다. 이곳은 내가 다니던 신문사 사주와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 유명한 맛집을 함께 다녔다. 대개 고관대작, 재벌 총수, 대기업 CEO 출신들이었는데, 아침부터 모여 그날 갈 맛집을 고르는 ‘구수회의’를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처음엔 돈 많은 사람들이 그저 유명하고 비싼 곳에 가면 될 텐데 왜 그리 신중할까 싶었다. 그런데 따라가 보니, 허름한 골목의 작은 가게들이 많았다. 인색한 건가 싶었지만, 막상 먹어보니 음식 맛뿐만 아니라 식당 주인의 환대, 홍콩 뒷골목의 정취가 한마디로 ‘끝내주었다.’

사주는 나를 재벌 총수 곁에 앉혔다. 처음엔 ‘높은 분을 시중들라는 건가’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타국에서 고생하는 소속 기자를 함께 챙기는 자리였다.

사주가 나를 챙기니, VIP들도 내게 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밑에 사람의 마음을 얻었고 나도 그에게 진심으로 대했다. 밥 한 끼가 만들어내는 인간관계의 힘을 배웠다.

‘맛의 천국’ 홍콩에서는 화려한 레스토랑보다 이처럼 뒷골목 허름한 식당에서 ‘진짜 맛집’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은 몽콕과 인접한 야우마테이의 힝키레스토랑. 홍콩식 솥밥 식당이다. /홍콩 관광청

그래서 나는 ‘맛집순례’를 시작했다

그런 경험을 살려, 귀국 후 나도 ‘맛집 순례’를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풀고, 좋은 인간관계를 쌓으며, 소소한 행복을 찾는 일석삼조의 방법이었다.

편집장을 할 때는 아예 ‘맛집 코너’를 만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20년 전 기사를 지금도 걸어둔 식당도 많다. 간혹 나를 기억하고 있는 집에선 종종 서비스가 따라온다.

행복심리학자로 유명한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이 사진 한 장으로 요약된다. 행복과 불행은 이 장면이 가득한 인생 대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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