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불법 투자 등 15가지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장관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3일 4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작년부터 ‘조국 사태’라는 이름으로 극심한 국론 분열을 일으켰던 ‘조국 일가(一家) 사건’에 대한 첫 사법적 판단이 나온 것이다. 법원은 이날 정 교수의 입시 비리 관련 혐의는 모두 유죄, 사모펀드와 증거인멸 관련 혐의는 일부 유죄로 판단하면서 혐의 11개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재판장 임정엽)는 이날 정 교수 혐의 대부분을 인정하며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 추징금 1억3894만원을 선고했다. 우선 재판부는 정 교수가 ‘허위·조작 스펙’ 7가지를 딸 조민씨의 입시에 활용해 서울대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업무를 방해했다고 판단했다. 조민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증명서와 동양대 총장 표창장은 조국 부부가 위조한 것이고, 공주대·단국대·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턴 확인서는 정 교수 부탁으로 허위로 발급받은 것이라고 봤다.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논문에 제1 저자로 오른 것에 대해선 조민씨가 기여한 것이 없고 이 연구소의 인턴 확인서 역시 허위라고 판단했다. 이 중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서류 위조, 부산의 한 호텔 인턴 서류 허위 작성, 정 교수의 ‘동양대 사무실 PC’ 증거은닉 교사 혐의 등 3가지에 대해선 조 전 장관과 공모한 사실도 인정했다. 다만 해당 증거은닉 교사 혐의는 방어권 차원으로 인정해 처벌 대상으로 판단하진 않았다.
사모펀드 관련 의혹에서는 정 교수가 남편의 당질(5촌 조카) 조범동씨에게 얻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해 부당 이득 2억3000만원을 얻고, 재산 내역 은폐를 목적으로 차명 거래를 한 혐의가 인정됐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정 교수)은 단 한 번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면서 “공정한 경쟁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을 저버렸다”고 했다.
작년 8월 조 전 장관 일가 수사가 시작되자 조 전 장관 자신은 물론 범여권 정치인들은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격했다. 이날 법원이 검찰의 공소 사실 대부분을 인정하자 법조계에선 “‘검찰 개혁 저항'이란 주장이 힘을 잃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조국수사는 검찰쿠데타’라던 與… 유죄에 당혹
조국 전 법무장관과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른바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자 ‘검찰 쿠데타’라고 해왔던 여권(與圈)은 23일 정 교수가 징역 4년에 벌금 5억원이라는 중형(重刑)을 선고받자 “상상하지 못한 결과”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판결이 너무 가혹해 당혹스럽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판결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친문(親文) 지지자들 사이에서 ‘조국 수호대’로 불린 김용민 의원은 “법원이 위법 수사와 기소를 통제해야 하는데 오늘은 그 역할을 포기한 것 같다”고 했다. 김 의원은 “윤석열이 판사 사찰을 통해 노린 게 바로 이런 것”이라고도 했다. 법원이 검찰을 의식해 정 교수에게 유죄를 선고했다는 주장으로 해석됐다. 김남국 의원은 “가슴이 턱턱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다”며 “세상 어느 곳 하나 마음 놓고 소리쳐 진실을 외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의원은 “감정이 섞인 판결,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며 “부디 조 전 장관과 정 교수가 힘내길 빈다”고 했다. 정청래 의원은 “억울하고 분한 판결”이라고, 신동근 최고위원은 “‘검찰 개혁 집중하느라 사법 개혁을 못했다'(는 말을) 오늘 뼈저리게 실감한다”고 했다. 윤영찬 의원은 “그 시절 자식 스펙에 목숨 걸었던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을 대신해 정 교수에게 십자가를 지운 것이냐, 잔인하다”고 했다. 지난 총선 때 ‘친조국’을 내걸었던 열린민주당도 “머리 숙여 선처를 구하지 않으면 유죄라는 사법부”라고 했다.
민주당은 작년 9월 검찰이 정 교수를 재판에 넘기자 “조국 낙마를 노린 검찰의 또 다른 국정 농단” “(무리한 수사로) 검찰이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정권 흔들기”라고, 민주당 김종민 최고위원은 “(조 전 장관 부부가) 린치를 당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 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된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는 4월 총선에서 당선된 뒤 검찰을 향해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정 교수 유죄 판결에 이들은 침묵했다.
정 교수 유죄 판결이 알려지자 친문 지지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온라인 게시판에는 재판장 이름을 거론하며 “확증 편향으로 재판을 하는 사람” “적폐 판사의 희대의 오판” “사법부 쿠데타”라며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반(反)조국’ 진영에서는 조 전 장관이 지난 2013년 11월 소셜미디어에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국가기관 주도로 사건 진실을 농단하려는 수작”이라고 쓴 글을 올렸다. 정 교수 판결에 대해 “항소해서 다투겠다”고 한 조 전 장관을 비꼰 것이다. 정 교수가 딸의 ‘동양대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은 “(판결을 보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말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며 “형량이 무거워 항소하겠다는 것인지 아직도 죄가 없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사필귀정”이라며 “국민은 이미 마음속으로 유죄를 선고한 지 오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