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방의원(광역 및 기초) 3명 중 1명 가까이가 학교 예산안과 결산, 교과서 선정, 대입 특별전형의 학교장 추천 등에 관여하는 학교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당이 강행 처리를 예고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은 현재 자문기구인 사립학교의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를 국공립과 동일하게 심의기구로 격상하도록 규정해 현직 지방의원인 학교운영위원들이 사학(私學) 운영을 좌우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사학법 개정안은 사립학교 교사 채용시험(필기)을 교육청에 위탁하도록 의무화하고 사무직원의 징계도 교육청이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학들이 인사·징계권에 이어 학교 운영권까지 거의 모든 권한을 빼앗기게 되는 셈이다.

29일 정경희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교육부 등에서 제출받은 지방의원의 학운위 참여 현황에 따르면, 전국 지방의원 3750명 중 27%인 1016명(2020년 기준)이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은 전체 지방의원(155명)의 절반이 넘는 88명(56.8%)이, 경기도는 지방의원 588명 가운데 271명(46%)이 학교운영위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50%)·울산(48.6%)·전남(36.5%) 등도 학교운영위원을 맡은 지방의원 비율이 높았다.

자료=교육부, 국회 정경희 의원실

학교운영위원회를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강화하는 초중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사립학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학운위 권한 강화가 학교장이나 학교법인 이사회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학운위 기능으로 학칙 제·개정, 학교 예·결산, 교육과정의 운영 방법, 교과용 도서와 교육 자료의 선정은 물론이고 교복·졸업앨범 등 학부모 경비 부담과 관련된 사항, 방과 후 또는 방학 중 교육 활동 및 수련활동, 공모 교장의 공모 방법, 초빙교사의 추천, 학교 급식, 대학입학 특별전형 중 학교장 추천 등까지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에선 국공립 학교의 경우 이 사항들은 학운위 심의 대상이다. 다만 사립학교 학운위는 공모 교장 공모 관련과 초빙교사 추천, 학교발전기금 조성·사용 등만 심의 권한이 있고 다른 사항은 자문 권한만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번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서 사립학교 학운위도 법에 열거된 모든 사항을 심의하도록 권한을 강화했다. 사립학교에서도 학운위가 학교 운영 전반뿐 아니라 교과서 선정, 대입 학교장 추천 전형까지 관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예컨대 좌편향 논란을 빚은 한국사 교과서를 비롯해 검정 교과서를 어느 출판사 것으로 배울지 결정할 때도 학운위 심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정경희 의원은 “현직 지방의원으로 학교운영위원을 맡은 이들의 정치적 입김이 사립학교 운영 전반에 작용할 여지가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전국 광역의원의 79%, 기초의원의 56%에 달하는 점을 들어 학교운영위원을 맡은 지방의원들도 과반이 민주당 소속일 것으로 추정한다. 경기도의 경우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지방의원(271명)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데, 경기도 전체 광역의원(이하 당선인 통계 기준)의 95%, 지방의원의 65%가 민주당 소속이다. 인천 전체 지방의원의 56.8%는 학교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인천 역시 광역의원의 92%, 기초의원의 60%를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다.

이번 집계에서 제주는 지방의원 38명 가운데 19명(50%)이, 울산은 지방의원 72명 가운데 35명(48.6%)이 학교운영위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 17개 시도에서 전체 지방의원 대비 학교운영위원 비율이 30%가 넘는 곳이 절반 이상인 9곳으로 조사됐다.

사립학교들은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초중등교육법과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사학의 손발을 다 자르고 국공립 학교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는 “사립학교 학운위를 심의기구로 만들면 지방의원 등 직업 정치인 세력이 학교 운영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교육을 정치화하는 주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면서 “이에 따른 피해는 결국 학생과 학부모들이 떠안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