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한 층에 70여 명이 화장실 한 칸을 같이 써요. 내가 코로나 걸리는 것보다 남한테 옮길까 봐 그게 더 걱정이에요.”

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만난 나모(54)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고시원에 살고있는 그는 이날 ‘취약 계층의 코로나 치료 대책’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하고자 거리로 나섰다. 그는 “고시원 사는 사람들은 집도 없는데, 치료 시설도 제때 들어가기 어려우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5000명을 넘어서는 등 확산세가 심한 가운데 정부의 ‘재택 치료 방침’을 두고 취약 계층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방역 당국은 감염에 취약한 고시원·쪽방 거주민, 보호자가 없는 장애인과 70세 이상 노인 등은 재택 치료 예외 대상으로 정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생활치료센터도 들어가기 힘든데, 코로나에 걸리면 바로 방치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한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 강모(76)씨는 최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방에서 쫓겨났다. 감염 소식을 들은 집주인이 그가 외출한 사이 방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다른 사람에게 코로나 옮길 수 있으니 다른 데로 가달라”고 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은 강씨는 사흘째 지인의 사무실에 머물고 있다.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는 “강씨는 경증인 데다 병상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생활 치료 시설에도 못 들어가고, 하루 한 번 배달 오는 도시락에 의존하고 있다”며 “주거가 불안정하고 연고도 없는 쪽방촌 주민들은 코로나에 걸리면 바로 거리에 나앉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들을 돕는 시민단체 관계자는 “일부 쪽방 임대업자는 열, 기침 같은 코로나 유사 증상만 보여도 거주민을 퇴거시키고 있다”고 했다.

병상 부족을 이유로 입소가 지연되는 사이 고시원·쪽방촌에 코로나가 퍼지기도 한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지난달 22일 용산구의 한 고시원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 5일이 지나서야 병원으로 이송됐고, 그새 같은 고시원에서 확진자 2명이 더 나왔다”며 “정부의 방치로 주민들은 두려움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지자체에 취약 계층을 위한 임시 생활 시설, 생활치료센터 등을 제공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서울에서 병상 배정이 일부 늦어져 대기자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다리면 순서에 따라 다 배정은 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