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 오류 논란을 빚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의 정답 결정 유예 여파로 대입 수시모집 일정이 줄줄이 연기됐다. 1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는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의 첫 변론기일에서 “이 사건의 판결을 17일 오후 1시 30분에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법원이 1심 선고일을 예고한 뒤 교육부는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기한을 오는 16일에서 18일로 이틀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시모집 합격자 등록 기한(12월20일→12월21일), 미등록 충원 기한(12월27일→12월28일), 충원 등록 마감(12월28일→12월29일) 등도 잇따라 연기됐다.
정답 유예로 생명과학Ⅱ 응시생 6515명이 해당 과목 성적이 비어 있는 수능 성적표를 받으면서 판결 전에 합격자를 발표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탐구영역을 포함해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제시한 대학들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생명과학Ⅱ 성적을 발표하지 않은 가운데 합격자 발표를 할 수 없는 상태다.
수시모집 일정을 연기한 교육부는 오는 30일부터 시작되는 원서 접수 등 정시 모집 일정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평가원은 오는 17일 법원 선고가 나오면 그 결과를 반영해 생명과학Ⅱ 성적을 당일 오후 8시부터 평가원 홈페이지 ‘수능성적증명서 온라인 발급시스템’을 통해 제공할 예정이다. 이날 각 대학도 평가원 시스템을 통해 생명과학Ⅱ 응시자의 성적을 확인하고 수시모집 전형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정시모집 일정이 그대로 진행되더라도 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교육부와 평가원은 1심에서 질 경우 항소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패소해 생명과학Ⅱ를 다시 채점한 성적을 내더라도 평가원이 항소한다면 2심 결과에 따라 재채점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또 평가원이 1심에서 승소하더라도 항소심에서 지면 역시 재채점이 불가피하다. 두 경우 모두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결과를 흔들 수 있어 혼란이 예상된다. 앞서 2014학년도 수능의 세계지리 8번 출제 오류 소송에서도 수험생들이 1심 패소 후 2심에서 승소해 오답 처리됐던 1만8884명의 성적이 재산출됐고, 이를 토대로 대학(전문대 포함)들이 입학 전형을 재실시해 629명이 추가 합격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교육부와 평가원이 1심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시와 정시 합격자 발표가 끝난 이후에도 재판이 계속 진행돼 결과가 달라지면 더 큰 혼란이 생긴다”며 “교육부와 평가원은 1심에서 지면 항소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행정적 절차나 자존심을 세우려는 의도로 판결에 불복해 시간을 끌거나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법원의 정답결정 집행정지 인용 등 시나리오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와 평가원이 대책을 미리 세우지 못해 수험생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며 “교육부와 평가원은 이번 사태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