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서해상에서 숨진 공무원 이모씨의 유족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2억원을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뉴스1

2020년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모(당시 47세)씨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29일 오후 피살 공무원 유족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을 상대로 이씨의 아들과 딸에게 각각 1억원씩 총 2억원을 배상하라는 내용의 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소장에서 “아버지가 불에 타 죽은 사실로 인해 어린 나이의 아들과 딸이 겪은 정신적 피해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며 “북한이 각각 1억원씩 2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망한 이씨의 아내 권모(43)씨는 아들 이모(19)군이 작성한 기자회견문을 대신 읽었다. 이군은 서면에서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힘없는 국민이 직접 나서 북한의 죄를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됐다”며 “실효성이 없는 소송이 될지라도 훗날 혹시라도 통일이 된다면 반드시 그 죄의 대가를 묻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살인자를 처벌할 수 없는 이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그 대가가 고작 2억 원의 소송이라니 참담한 심정”이라며 “지금이라도 죽음에 대한 실체를 밝혀 살인자를 처벌하고 내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길 경고한다”고 했다.

북한을 피고로 한 소송에서 이겨도 돈을 받을 가능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유족 측 법률대리인은 “북한 측 돈 약 20억원이 법원에 공탁돼 있어서 이 소송에서 이길 경우 돈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현재 법원에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북한 저작물을 사용한 국내 방송사들로부터 북한을 대신해 저작권료를 걷은 돈 20억원 가량이 공탁돼 있다. 경문협은 2004년부터 이 돈을 북한에 송금해왔지만, 2007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여파로 송금이 금지되면서 돈을 법원에 맡겨뒀다.

다만, 북한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돈이 실제로 지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20년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6·25 때 북한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한 이들이 북한 정부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북한 당국이 두 사람에게 각각 2100만원을 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경문협이 이 돈을 지급하지 않자, 국군포로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북한 정부에게서 받아야 하는 손해배상금을 경문협으로부터 받을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한편, 국방부는 2020년 9월 이씨 사망이 확인된 후 ‘이씨가 자진 월북했고, 북측이 총격을 가한 후 시신을 불태웠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이씨가 자진 월북할 이유가 없고, 사망 경위 역시 불확실하다”며 정부에 진상 규명과 관련 자료 공개를 요구해왔다. 유족들은 작년 11월 청와대와 해양경찰청(해경) 등을 상대로 한 정보 공개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지만 청와대 등은 항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