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은 유독 바람이 많이 불었다고 한다. 2020년 9월 20일 밤 11시30분, 연평도 어촌계장 신중근씨는 잠에서 깨 바다를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의 눈에 불빛이 들어왔다. 소연평도 해역에 떠 있는 어업지도선의 불빛이었다. 연평도의 가을철 꽃게잡이가 막 시작된 시점이었다.
연평도의 꽃게 어장은 봄·가을이 ‘성수기’다. 연평도는 꽃게의 산란기를 피해 4~6월, 9~11월에 조업을 집중한다. 연평도 인근 어업지도선의 주 업무는 우리 어선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가지 않도록 하고 NLL을 침범해 내려오는 중국 어선들과 우리 어민들이 충돌하지 않게 하는 일이다. 이때 어업지도선은 어민들과 한 몸처럼 움직인다.
통상 새벽 5시경 어업을 시작하는 연평도 어민들은 오후 5시쯤 일을 마치지만 어업지도선은 바다 위에 남아 자리를 지킨다. 연평도는 항만 시설이 부족해 배를 정박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업지도선은 웬만한 강풍이나 파도에도 사실상 24시간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한다. 당시 어촌계장 신중근씨가 목격한 어업지도선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무궁화 10호였다. 2020년 9월 16일 목포항에서 출항한 무궁화 10호는 하루 뒤인 9월 17일 연평도 어장에 도착했다. 같은 해 9월 25일까지 임무를 수행하다 목포로 귀항할 계획이었다.
신씨는 그날 밤을 기억했다. “9월이었지만 밤에는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었다. 연평도의 가을 날씨는 낮과 밤이 제각각이다. 아침에는 좋았다가도 밤에는 강풍이 몰아친다. 그래서 어업지도선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태다. 한밤중에도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밤바다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파도가 크게 몰아친다. 어업지도선 공무원들은 서해에서 군인들만큼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바람이 몰아쳐도 어디 가 있을 곳이 없다. 그날 밤 바다 위에 떠 있던 어업지도선을 보며 ‘참 안됐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연평도에 “해수부 직원 한 명이 실종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국방부가 9월 23일 해수부 직원의 실종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했고, 6일 뒤 정부는 이 공무원이 자진 월북했다가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종자는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해양수산서기(8급 공무원), 당시 47세였던 이대준씨였다. 정부는 이씨가 월북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정황들을 발표했는데 도박빚, 심리상태 등이었다. 이런 근거들의 나열에 유족들은 죄인 같은 처지가 됐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이대준씨 피격 사건을 다시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당시 월북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고, 김정은의 사과를 받아낸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유족들에게도 그럴까.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놓고 스스로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전(前) 정부의 발표를 유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야당 정치인들의 주장과 달리 이씨가 월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사고에 의해서 북한으로까지 흘러가게 됐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은 여전히 유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로 남아 있다.
연평도 어민들 “월북은 불가능”
문재인 정부가 월북의 근거라고 발표한 도박빚, 심리적 불안상태와 같은 것들을 △그날의 기상상황 △무궁화 10호에 동승했던 승무원들의 증언 △연평도 해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어민들의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어느 것이 더 객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먼저 이씨의 실종사실을 국방부가 확인한 다음날인 2020년 9월 24일 기자와 통화했던 연평도 주민들의 얘기부터 다시 짚어보자. 당시 연평도 주민들은 한결같이 “거기서 월북은 불가능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연평도에서 20년 이상 어업을 한 곽모 선장은 당시 통화에서 “이씨가 실종됐다는 소연평도 남방에서 북한까지 헤엄쳐 가려면 최소 15㎞ 이상을 가야 한다”며 “대연평도 인근에서 했다면 모를까 그보다도 남쪽인 소연평도에서 월북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연평도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나뉘는데, 소연평도는 대연평도보다 남쪽으로 약 4㎞ 아래 있다. 이씨는 이 소연평도에서도 남쪽으로 2㎞ 아래 해상에서 월북을 시도한 셈이다. 이씨가 실종될 당시 어업지도선 위치에서 북측 NLL까지는 10㎞ 떨어져 있었고, 가장 가까운 북측 육지까지는 약 20㎞ 거리다.
또 다른 연평도 어민은 “이씨가 정말 월북을 작심했다면 어업지도선에 달린 고속단정을 탈취해 달아나는 방법이 더 안전하지 않았겠느냐”고 추정했다. 이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은 무궁화 10호(499t)로, 고속단정을 싣고 운항한다. 이 어민 역시 “소연평도 밑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월북을 시도했다는 건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날 바다의 상황은 어땠을까. 당시 조류 상황 역시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이씨가 월북하지 않았을 것이란 쪽은 구명조끼와 부유물에만 의지해 동쪽으로 밀려오는 조류를 거슬러서 30㎞를 헤엄쳐 갈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당시 해경은 바로 그 조류를 거슬러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월북 의도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봤다. 조류와 관련해 해경 측은 중간수사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국립해양조사원 등 국내 4개 기관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실종 당시 조석, 조류 등을 고려하여 볼 때, 단순 표류일 경우 소연평도를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남서쪽으로 표류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표류예측결과와 실종자가 실제 발견된 위치와는 상당한 거리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인위적인 노력 없이 실제 발견위치까지 표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월북을 하기 위해 직접 헤엄쳐 갔을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30㎞를 거슬러 헤엄쳐 가는 것은 조류뿐만 아니라 수온을 비롯한 여러 가지 환경들이 뒷받침되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주간조선이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등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실종 당시 연평도 인근 수온은 22도였다. 목욕탕 냉수 정도의 온도인데, 이 정도 온도에서 장시간 물속에 몸을 담글 경우 저체온증으로 사망에까지 이를 가능성이 크다. 물은 공기에 비해 열전도율이 30배 가까이 빨라 체온 손실도 그만큼 빠르다. 전문가들은 성인 남성의 경우 수온 20도에선 24시간 정도 버틸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밤중의 바다 바람은 체감온도를 더 떨어뜨린다. 이씨는 바다에서 40여시간을 표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생존수영 전문 강사는 “전문 다이버들도 한밤중 바다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해서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반인이 아무리 수영을 할 줄 안다고 해도 수십 킬로미터 바다를 헤엄쳐 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20도 수온에서 24시간 버틸 수 있다는 것도 의학적 분석일 뿐, 현실적으로는 그보다 짧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오랜 기간 어업지도선을 타고 다니며 이 일대 지형과 바다 상황에 밝은 이씨가 저체온증 등을 고려하지 않고 조류를 거슬러 30㎞를 헤엄쳐 가려는 의지를 가진 것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SI에도 이씨의 직접 의사 담기지 않아
동료 선원들도 이미 해경 수사에서 이씨의 월북 가능성을 일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실이 2020년 10월 9일 해양수산부로부터 입수한 ‘무궁화 10호 선원 13명의 진술조서 요약보고서’를 다시 보면 동료 선원들은 “조류가 강하고 당시 밀물이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부유물과 구명동의를 입고 북쪽으로 헤엄쳐 갈 수가 없다” “평소에 북한에 대해 말한 적도 없고 월북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씨는 평소 동료 선원에게 지인으로부터 꽃게 ‘구매 대행’을 하곤 했는데, 실종 직전인 9월 19일과 20일까지 동료들에게 꽃게값을 받았다고 한다. 월북을 작정한 사람의 행적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도박빚과 같은 근거만 가지고 이씨가 월북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2020년 9월 29일, 해양경찰청은 수사 중간발표 브리핑을 통해 이씨가 인터넷 도박으로 수억원의 빚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해경 관계자는 “수사 결과 실종자의 전체 채무는 3억3000만원 정도로 파악됐다”며 “그중에 인터넷 도박으로 지게 된 채무는 2억6800만원 정도로 총채무에서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종자의 금전 상황이 좋지 않았고 가정도 불우한 것으로 보이지만 단순히 채무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월북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국방부 협조를 얻어 파악한 자료 등을 토대로 월북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때 해경이 밝힌 ‘국방부 협조 자료’란 북한군의 통신 내역을 감청한 우리 군의 특수정보(SI) 자료다. 여기에 이씨가 북측에 월북 의사를 밝힌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지금도 야당 인사들이 말하는 월북의 객관적 정황이다. 하지만 이 감청 자료는 북한군 간의 통신을 감청한 것이지, 이씨의 음성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2020년 10월 합참에 대한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원인철 당시 합참의장은 ‘월북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었냐’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의 질문에 “그 단어는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희생자(이대준씨)의 육성이 있냐’는 질문에는 “상식적으로 우리가 희생자의 육성을 들을 순 없다”고 답했다. 당시 이씨를 발견한 북한군 간의 대화 내용에 ‘월북’을 뜻하는 내용은 등장했지만, 이씨가 직접 밝힌 의사인지는 불투명한 것이다.
이는 사건 직후 북한이 보낸 통지문에서도 드러난다. 2020년 9월 25일 북한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명의로 보낸 통지문에 따르면, 이씨로부터 북한군이 월북 의사를 전달받았다는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오히려 이 통지문에는 이씨에 대한 북한군의 제대로 된 신문 과정이 없었다는 점이 드러나 있다. 북은 통지문에서 “강령반도 앞 우리 측 연안에 부유물을 타고 불법 침입한 자에게 80m까지 접근해 신분확인 요구했으나, 처음에는 한두 번 대한민국 아무개라고 얼버무리고는 계속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측 군인들의 단속 명령에 함구하고 불응하기에 더 접근하며 두 발 공포를 쏘자 놀라 엎드리며 정체불명 대상이 도주할 듯한 상황(이) 조성됐다고 한다”라고 했다.
북은 또 “일부 군인들 진술에 의하면 엎드리면서 무엇인가 몸에 뒤집어쓰려는 듯한 행동을 한 것 같다고도 했다”라며 “우리 군인들은 정장의 결심 밑에 해상경계 근무규정이 승인한 행동 준칙에 따라 10여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를 향해 사격했고 이때 거리는 40~50m였다고 한다”라고 했다. 북은 “사격 후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어 10여m 접근해 확인 수색했으나 정체불명 침입자는 부유물 위에 없었으며 많은 양의 혈흔이 확인됐다고 한다. 우리 군인들은 불법 침입자가 사살된 것으로 판단했으며 침입자가 타고 있던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한다”고 했다. 물론 북의 통지문을 그대로 신뢰하긴 어렵다. 우리 군이 파악한 정보와 다른 점도 있다. 북한 경비정 정장 결심으로 사격했다는 북한 측의 설명과는 달리, 정장은 오히려 상부(해군사령부)의 사살 지시 명령을 받고 되물었다는 정황을 우리 군 당국이 파악했기 때문이다. 해경은 실종자만이 알 수 있는 본인의 이름·나이·고향 등 신상 정보를 북측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는데 이 부분도 북의 설명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고된 싸움 시작한 유족들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은 이씨의 유족으로 하여금 이씨의 월북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지난 2년을 도박빚 때문에 월북한 사람의 부인, 자녀, 형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유족들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냈다. 대통령 후보를 만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6월 16일 해경과 국방부는 이씨에게서 월북 의도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2년 전 해경의 중간수사 결과를 해경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박상춘 인천해경서장은 “국방부 발표 등을 근거로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현장조사 등을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윤형진 국방부 정책기획과장도 브리핑장에 나와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었다”며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있었다는 것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북측의 실종자 해상 발견 경위, ‘군사분계선 인근 해상(연평도)에서 일어난 실종사건’ 관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항소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 항소를 취하했지만, 문재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 사건 관련 정보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기록물은 최장 30년까지 비공개되며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 동의가 있어야 열람할 수 있다.
이씨의 유족은 대통령기록관에 정보 공개 청구를 제기했지만, 지난 6월 22일 대통령기록관은 해당 자료가 존재하지 않거나 찾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대통령기록관은 일반기록물에 대해선 “19대 대통령기록물이 이관된 이후 아직 정리 및 등록이 완료되지 않고 진행 중인 상황에서 최대한 찾아봤지만 해당 기록이 부존재한다”고 했다. 대통령기록관은 ‘지정기록물’의 경우 열람이 아예 허용되지 않아 존재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대통령 지정기록물’은 어떤 자료가 해당되는지에 관한 ‘목록’까지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지정돼 있어 아예 검색을 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대준씨의 친형 이래진씨는 지난 6월 2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찾아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종호 전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을 고발했다. 죄명은 공무집행방해죄와 직권남용죄, 허위공문서작성죄이다. 유족들은 2020년 9월, 해수부 소속 무궁화 10호 1등 항해사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 살해됐을 당시 이들이 해양경찰청의 수사를 방해하고, 국방부에 ‘월북 프레임’ 지침을 내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래진씨는 이날 “최고위 공직자들로서 마땅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만든 지위와 직권을 위법하게 사용했다는 정황들이 있다”라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 해결의 키가 될 수 있는 SI나 대통령기록물의 공개는 여러 가지 여건상 쉽지 않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유족들의 오랜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