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도구’로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고농축니코틴’의 관리감독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쇼핑몰, 포털 스토어에는 1000개도 넘는 업체들이 전자담배 액상을 팔고 있다. 액상의 ‘베이스’가 되는 향료를 직접 구매자가 제조해서 쓰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도 하고, 맞춤형으로 액상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토어나 쇼핑몰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액상은 기본적으로 무니코틴으로 홍보하고 있다. 실상은 달랐다. 실제로 비흡연자인 기자가 전자액상담배를 파는 포털사이트를 통해 고농축니코틴을 구매해봤다.
온라인상에서 공식적으로는 니코틴 원액을 구매할 수 없다. 업체가 안내하는 전화번호로 별도 문의를 해도 “인터넷에서 니코틴 포함 원액은 판매 불가”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나 흡연자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은어인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액상을 빨아들일 때 호흡기에 전해지는 니코틴의 충족감을 뜻하는 이 단어를 사용해 ‘○○○이 좋은 제품은 구매가능한지’를 묻자 추가 안내가 이어졌다.
“다른 업체에서는 멘솔을 조금 넣어서 ○○○이라고 하는데, 멘솔 넣은 ○○○과 퓨어 니코틴은 맛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며 “니코틴을 희석해서 파는 곳도 있는데, 우리는 진한 만큼 액상 여러 개를 만들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기자는 ‘○○○이 좋다’는 수입산 천연 원액 퓨어 니코틴을 주문했다. 이 모든 과정이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업체는 안내해준 계좌에 돈을 부친 지 20분 만에 상품이 발송됐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날 집으로 고농축니코틴이 배달됐다. 안약병 모양 용기에 옅은 갈색빛이 나는 용액이 3분의1가량 들어있는데, 용기 외부에 2㎖·990㎎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즉 2㎖에 990㎎의 니코틴 원액이 들어있다는 의미였다. 각종 연구자료에 따르면 니코틴이 체내에 흡수됐을 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양은 평균 60㎎(개인차에 따라 50~10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담배 한 개비에 2㎎ 이하가 포함돼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담배 30개비 정도를 한 번에 태우는 양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날 택배로 날아온 극소량의 용액에는 치사량의 최소 10배, 최대 20배가량의 니코틴 원액이 들어 있었다.
매장을 직접 방문해 신원 확인을 하면 니코틴 용액을 판매하는 업체들도 있다. 역시 포털 스토어나 별도의 사이트에 안내된 연락처로 미리 연락하기만 하면 된다. 함유량은 업체마다 다르지만, 환경부에서 유해물질로 지정하는 1%를 훌쩍 넘는 용액도 이처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미성년자 구매대행도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미성년자를 위한 ‘댈구(대리구매)’ 광고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성인인증을 할 수 없는 미성년자를 대신해서 니코틴액이나 혼합 액상을 보내주고 계좌이체로 값을 받는 식이다. 다만 본인인증 절차가 없다 보니 판매자에 대한 신원 확인도 어려워서 구매자가 사기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보인다.
액상전자담배와 관련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범죄에 활용될 수 있는 고농축니코틴 등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던 니코틴 살인사건. 당시 프로그램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미숫가루 등을 먹여 니코틴 중독으로 숨지게 한 30대 여성 A씨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다뤘다. 살해 의혹을 받은 여성은 방송을 통해 혐의를 부인했으나, 결국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3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A씨가 2021년 5월 26일부터 27일까지 남편 B씨에게 총 3차례에 걸쳐 니코틴 원액이 들어있는 미숫가루와 물 등을 마시게 해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당시 1차적으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A씨가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1회만 마시게 해 살해했다는 내용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검찰은 니코틴 음용 사례를 분석하고 법의학자 감정 및 부검의 면담, 피해자 휴대전화 디지털포렌식 등 보완수사를 통해 A씨가 남편에게 총 3회에 걸쳐 니코틴 원액을 마시게 해 살해한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검찰은 지난 4월 21일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한 주요 내용과 문제점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열면서도 ‘검찰의 보완사례가 필요했던 대표사례’에 이 사건을 포함시키는 등 니코틴을 이용한 살인사건은 수사기관 내에서도 큰 관심 사안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영향으로 니코틴을 이용한 살인사건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비슷한 사건들은 이전에도 꾸준히 발생했다. 2018년에는 갓 결혼한 남성이 사망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신혼여행지에서 부인에게 니코틴을 주입해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발생했다. 니코틴원액을 이용한 살인사건이 처음 발생한 것은 전자담배가 대중화되던 시기인 2016년이다. 당시 담배를 피우지 않던 50대 남성 B씨가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부검결과 B씨의 혈액에서 치사량의 니코틴이 검출된 바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변사처리했으나 검찰의 보강 수사 결과 아내와 아내의 내연남이 해외에서 액상전자담배용 니코틴을 구입한 사실을 파악하고 B씨의 시신을 부검했다. 두 사람은 2017년 9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니코틴을 이용한 살인 및 음독자살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전자담배 대중화에 따라 고농축 니코틴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된 탓이 크다. 연초담배와 달리 시중에서 팔리는 액상전자담배는 사실상 정부기관의 관리감독 밖에 있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관세청, 국세청 등 관련 부처가 담배사업법과 관련한 정책 및 과세를 담당하고 있지만, 액상전자담배의 경우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단속할 부처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런 사각지대를 이용한 제조 및 판매업자들의 불법행위가 온·오프라인상에서 난무하고 있으며, 결국 범죄에도 이용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온·오프라인에서 왜 이렇게 버젓이 고농축니코틴이 판매되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담배 관련법에는 니코틴이 포함된 액상 무게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한다. 액상에 아주 소량의 니코틴만 함유되어 있어도 용액 전체에 세금을 매기게 되어 있는 것. 이에 액상전자담배 업자들이 향료가 들어간 액상은 별도로 온라인에서 팔고, 고농축니코틴은 은밀하게 따로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액상 제조업체가 아닌 소비자가 직접 니코틴을 액상향료와 섞어서 피우라는 식으로 방법을 바꾼 것이다. 농축비율이 아닌 니코틴이 함유된 액상의 무게에 대해서만 세금을 매기는 것을 역이용한 셈이다. 이처럼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고농축니코틴을 포털 등을 통해 손쉽게 구매할 수 있지만 포털 등에서는 ‘무니코틴’이라고 홍보를 하다 보니 단속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탈세 피하려는 업자들의 꼼수
고농축니코틴 판매 외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STEM으로 불리는 줄기니코틴이나 합성니코틴 등의 판매다. 담배사업법 1장 2조에는 담배란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는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정부가 제정한 조세원칙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 KT&G나 외국 브랜드의 연초담배는 원칙대로 세금을 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는 최근 급속도로 시장이 커지고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되어 있다.
전자담배 업계의 최대 과제는 세금과 유해성이다. 전자담배는 다시 궐련형과 액상형으로 나눠지는데 궐련형 전자담배는 주로 대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KT&G도 궐련형 제품을 만들고 있으며, 말보로를 만드는 필립모리스가 생산한 제품이 국내 궐련형 전자담배 시장 1위 업체다. 여기도 대부분 세금을 정상적으로 낸다. 물론 유해성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다.
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은 다르다. 크게는 중소기업, 작게는 영세업체들이 판매를 하고 있는데, 과세나 유해성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건 사고도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되어 있다. 세금 문제를 피하기 위해 STEM, 줄기니코틴이나 합성니코틴 등으로 이름을 바꿔 판매하고 있지만 사실상 성분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연초니코틴 제품들이 시장에 우후죽순으로 판매된다.
그렇다고 모든 업체들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합성니코틴 제조업체들은 환경부의 유해성 시험 등을 완료한 후 제품을 판매한다. 우리나라도 영국과 같은 나라처럼 판매 출시 전 유해성 시험을 완료한 제품만 판매하게끔 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유해성 심사를 하려면 수억원의 비용과 3년 이상의 오랜 시험기간이 소요되고, 유해성 검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가 전무하기 때문에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자발적으로 유해성 시험을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액상형 전자담배 업체들은 연초니코틴을 합성니코틴이라고 둔갑시켜 판매를 하고 있는 것다.
유해성 시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의 판매는 국민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고, 고농축니코틴, 유해성 검증은 받지 않은 합성니코틴과 같은 편법을 부추긴다. 영세업체들은 단속이 돼도 미미한 수준의 과태료만 내고 별다른 형사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만 바꿔서 제품을 판매한다.
줄기·뿌리 니코틴 불법 수입업체를 적발했을 때 과태료나 형사처벌 등 처벌 성격의 조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불법 수입업체는 세금을 피할 목적으로 잎에서 추출한 니코틴을 줄기 등에서 추출했다고 허위신고하는 경우 등을 말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관세법상 허위신고죄는 대부분 통고 처분, 즉 피해간 세금에 대해서만 과세 처분을 한다. 처벌보다는 좀 약한 처분”이라며 “징벌적 성격으로 과태료를 매긴다든가 형사 처벌을 하는 경우는 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제품을 파는 업체들은 이미 단속을 피하는 법부터 단속 시 대처방안 등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까지 운영하고 있다. 수천 개의 브랜드가 난립하고 있지만 중국에서 들여오는 니코틴용액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몇몇 업체들로 한정되어 있다. 사실상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액상형전자담배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제조된 연초니코틴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줄기에서 추출할 수 있는 니코틴의 양은 극히 적기 때문에 줄기니코틴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감사원 “줄기니코틴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감사원이 2019년 관세청과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에 대해 실시한 ‘연초 줄기·뿌리 추출 전자담배 니코틴 용액의 수입 및 관리 실태’ 감사에 따르면 줄기니코틴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에 대해 관련 부처에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명확하게 액상형 전자담배를 관리감독하는 주무부처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엔 문제가 불거졌을 때 땜질식으로 과태료를 매기는 사후처리에만 관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마저도 제보 등에 의존하고 있다. 그나마도 형사처벌에 대한 입법도 미비하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런 제품들이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결국 검증되지 않은 액상형 전자담배의 피해는 직·간접 흡연자 모두에게 돌아간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고 세수와도 관련이 깊은 액상전자담배 시장의 규모는 현재 1조원이며 연간 250만병의 액상이 판매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 관련 부처의 관리감독이 절실하지만 쟁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주무부처가 다르다. 예를 들어 담배 정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 부처는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관세청 등이며 유해성 검사는 환경부, 온라인 불법 판매 등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담당하고 있다.
담배에 대한 과세정책 주무부처인 기재부 관계자는 “(감사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줄기니코틴에도 세금 부과는 정확히 하고 있다”며 “(액상형 담배와 관련해) 담당 기관끼리 모여서 협의를 하긴 한다”고 말했다. 유해성 시험 주무부처인 환경부에서는 “니코틴 함량이 1% 이상이면 유독물질이라 환경부가 관리를 하는데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를 보면 함량을 기재 안 하는 경우도 있어 좀 애매할 때가 있다”며 “사전 단속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유해물질 온라인 판매에 대한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 공정위 측은 이에 대해 “유해제품이라면 모니터링 사업을 하긴 하는데, 플랫폼과 식품안전자율협약을 맺은 만큼 플랫폼 측의 조치를 지켜보고 있다”며 “무니코틴이라고 홍보하면 제재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전자담배 액상, 기기, 니코틴 등은 전부 식약처 소관 물품이 아니다”라며 “다른 부처에서 관련 실험이 필요하다든가 하는 부분이 있으면 대신 해주는 등 협조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액상전자담배 관련 컨트롤타워 부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금은 부처에서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이를 전담하는 주무부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며 “의학적, 환경적 측면을 모두 고려하는 측면의 전담 부서가 있어야 효과적으로 규제·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