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인 ‘마약 시음회’ 사건 총책 2명이 중국에서 보이스피싱 조직 일원으로 활동 중인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경찰은 이 2명 윗선에 중국 배후 조직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추적 중이다. 특히 경찰은 이번 사건이 전화로 상대를 속여 돈을 갈취하는 종전 보이스피싱 수법과 완전히 달라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마약수사대 관계자는 “국외 보이스피싱 조직이 국내에서 특정인에게 마약을 실제로 먹인 뒤, 전화로 협박해 돈을 빼앗으려 하는 ‘신종 마약 피싱(마약+보이스피싱)’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했다.

배우 유아인이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27일 서울 마포구 마약범죄수사대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2023.3.27/뉴스1

◇20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중국서 지시

경찰이 이번 사건 배후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을 지목한 건 이 외에도 수사 과정에서 여러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사건에 동원한 마약 음료는 100여 병인데, 이 빈 병이 국제 특급 우편 등을 통해 중국에서 중간책에게 배송됐다. 조선족 말투를 쓰는 용의자들이 피해 학생 부모들에게 “자녀가 마약을 복용했다”며 협박 전화를 걸었는데 이 협박 전화 발신지 역시 중국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총책으로 추정되는 20대 한국인 A씨, B씨의 신원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국내 지인인 중간책 C씨에게 “필로폰을 보낼 테니,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마약 음료를 만들라”고 직접 지시했다 한다. A씨는 돈을 벌겠다며 수년 전쯤부터 중국을 왔다 갔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파악한 A의 최종 행적은 지난해 가을쯤 중국으로 출국한 이력이다. 경찰은 이들이 모두 마약 범죄에 가담한 이력이 없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외 보이스피싱 조직이 최근 마약 사업까지 손대면서 신종 사기 수법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황을 잡았다”고 했다.

◇중간책 2명은 검거했지만... 中과 수사 공조가 난관

경찰은 지난 7일 중간책 2명 검거에 성공했다. 마약범죄수사대는 필로폰 성분이 든 마약 음료를 제조한 뒤 고속버스와 퀵서비스를 이용해 서울의 아르바이트생 4명에게 전달한 혐의로 C씨를 7일 오후 강원 원주시에서 붙잡았다. C씨는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마약 음료를 제조한 뒤 중국에서 건너온 빈 병에 담아 서울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또 일당이 피해 학생 부모에게 협박 전화를 거는 과정에서 중계기를 이용해 휴대전화 번호를 바꾼 혐의로 D씨도 인천에서 긴급 체포했다. D씨는 ‘070′으로 시작하는 중국발 인터넷 전화를 중계기를 이용해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바꿔준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피해자 부모들에게 걸려온 협박 전화를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D씨가 중계기를 설치·운영한 사실을 확인했다. 중간책인 C, D씨 모두 한국인으로 경찰에서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진술한 상태다.

이번 범행은 중간책과 말단 실행책이 서로를 알지 못하는 ‘점조직’ 형식으로 운영됐다. 전형적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이다. 결국 이 사건 전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총책인 A씨, B씨를 잡아야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총책이 중국에 있으면서 콜센터를 운영하는데, 이들을 검거하려면 중국 공안과 반드시 공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16년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시스템) 배치 등을 놓고 최근 한·중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중국 공안이 보이스피싱 일당 검거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 공안이 우리 측 수사 협조 요청에 시큰둥한 분위기”라고 했다.

◇마약 음료 시중에 18병 유통… 피해자는 총 8명

경찰은 유포된 마약 음료의 행방을 찾는 과정에서 음료를 받아 마신 피해 학생 1명을 더 확인했다. 피해자는 지난 3일 오후 6시쯤 대치동 학원가에서 마약 음료를 건네받아 복용했지만, 증상이 없어 별다른 신고를 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피해자는 학부모 1명을 포함한 8명이다. 경찰은 마약 음료 100병 중 실제 배포된 건 18병이고, 피해자들이 실제로 마신 건 8병으로 파악하고 있다. 마약 음료를 마신 피해자들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