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위치한 한 클럽에서 춤과 음악, 술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photo 권아현 기자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한 클럽. 계단을 타고 내려가 철문을 열자 새빨간 조명 아래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펼쳐졌다. 1m 앞 사람의 얼굴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다. 평소 접하는 정도보다 훨씬 큰 음악소리에 귀는 금세 먹먹해졌다.

과거 유흥업에 종사했던 A씨는 이른바 ‘물뽕(GHB)’ 성범죄가 이런 클럽에서 특히 이루어지기 가장 쉽다고 지적했다. “일반 술집은 조명이 밝고 보는 눈이 많다. 물뽕을 술에 ‘퐁당’ 탈 타이밍이 잘 안 난다.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룸살롱 같은 경우는 합의하에 지불된 금액으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물뽕 같은 것을) 쓸 필요가 없다.”

인터넷에 ‘물뽕 구매’를 검색하면 ‘클럽작업제’ ‘홍대강력물뽕’ ‘강남여성작업제구입’ 등 클럽 관련 키워드가 함께 검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뽕’이라고 불리는 마약인 GHB는 보통 물약 행태로 병에 담겨 유통된다. photo 연합

12시간 만에 체내서 배출… 검출 어려워

물뽕은 2018년 ‘버닝썬 게이트’로 위험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클럽 버닝썬에서 여성들을 성폭행하기 위해 유통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약물로, 감마히드록시 뷰티르산(GHB)이란 마약류를 이른다. 무색무취의 액체 형태인 이 약물은 약간의 짠맛을 갖고 있다. 액체에 타먹는다는 특성 때문에 한국에서 ‘물뽕’으로 불린다.

물뽕이 체내에 흡수되면 10~15분 이내 술에 취한 듯한 상태가 되고 기억을 잃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시간 이내에 몸 밖으로 배출돼 사후 추적도 어렵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주로 ‘데이트 강간약물’로 악용된다. 정희선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는 “물뽕은 다른 약물에 비해 대사가 굉장히 빠르다. 게다가 술과 함께 먹으면 배출이 더욱 빨라져 수사과정에서 검출이 어려워진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유튜브 등에 공개된 BBC 다큐멘터리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에서는 물뽕 피해자로 추정되는 여성의 인터뷰가 화제가 됐었다. 피해 여성은 “클럽에서 한 남성이 주는 술을 한두 잔 마시고 기억이 사라졌고, 눈을 뜨니 침대 위였다”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버닝썬에서 일했고, 지금은 강남의 다른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한 남성은 “버닝썬 때와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다”며 “클럽 내 물뽕 성범죄가 여전하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밀반입된 GHB. photo 뉴시스

한 번도 성범죄 도구로 입증된 적 없다

물뽕을 이용한 성범죄는 피해 입증도 어려울 뿐 아니라 실태조사도 되지 않아 정확한 피해 통계가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약물에 의한 성범죄 의뢰 건수, 유통량 등 여러 타 통계를 통해 추측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관세청이 발표한 2023년 마약밀수 단속 현황에 따르면, 물뽕(GHB)이 포함된 신종마약(케타민, MDMA, LSD, 합성대마 등)’ 적발 중량은 17만1600g으로 전년인 2022년 26만6800g보다 소폭 감소하였으나, 여전히 2억6000만명이 동시 투약 가능한 분량(물뽕 평균 1회 사용량으로 추정되는 1㎎으로 계산했을 경우)인 것으로 확인된다. 1998년 광주지검 근무 당시 ‘물뽕’을 최초로 적발해 마약류로 등재한 김희준 변호사는 “여전히 물뽕 성범죄는 만연하다”며 “시중에 유통되는 것이 전부 다 단속되는 게 아닌데, 물뽕의 경우 적발도 쉽지 않기 때문에 암수율을 고려하면 더욱 피해가 클 것으로 추측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물뽕이 성범죄 도구로 입증되어 처벌된 사례는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다. 2021년 한 약사가 물뽕(GHB)의 원료인 감마부티로락톤(GBL)을 사용해 여성을 성폭행한 사례가 최초로 입증됐다. 데이트 강간 피해자 체내에서 물뽕이 검출된 것은 이때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GBL은 마약류로 지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즉 타 마약류 사용과 성범죄로 인해 처벌을 받긴 했으나 물뽕의 원료인 GBL을 이용한 강간 혐의로 처벌받은 것은 아니게 되었다. 2022년이 되어서야 식약처에서는 GBL을 새로이 임시마약류로 지정해 관련법이 개정된 상태다.

5회용 55만원… “클럽에서 받아도 무방”

그렇다면 일반인이 어떻게 물뽕을 구매할 수 있는 걸까. 소셜미디어(SNS)에 정직하게 ‘물뽕 구매’라고 검색하자 수많은 판매책들이 ‘물뽕 구입처’ 채널을 광고하고 있었다.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폐쇄형 소셜미디어에서 아이디를 검색하자 물약 사진들과 ‘1병 35만 2병 60만’ ‘통당 5회용 원약’ ‘물뽕(GHB) 원액 4ml 45만, 8ml 75만 정품’ ‘1병 20ml 5회용 55만’ 등 채널마다 다양한 가격표를 안내하고 있었다. 기자는 그중 4명의 판매책에게 구매자를 가장하고 접근해봤다. “먹이면 바로 인사불성되는 건가요? 기억 못하고 몸에도 안 남는 것 맞죠?”라고 묻자 “10분 안 효과 나구요, 8시간 유지”라는 답이 왔다. “클럽에서 사용해보려 하는데”라고 말하자 “네, 사장님 작업용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클럽에서 아예 바로 받아볼 수도 있을까요”라는 질문에는 “가시는 클럽 이야기해주시면 근방에 ‘드랍’해드립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판매책들은 당연하게 물뽕이 범죄에 쓰일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는 듯했다.

판매책들은 비트코인 등 코인 결제나 무통장 입금을 요구했고, 입금이 되면 최소 40분에서 최대 1시간30분 만에 주소 근방에 ‘던지기(드랍)’한 후 위치를 사진으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4곳의 판매책 중 3곳이 1~3분 만에 즉각 답이 왔으며, 최대로 답이 늦었던 1곳 또한 1시간 만에 답장이 왔다. 마약 판매글 중 물뽕 게시물은 적게는 300~500회, 많게는 1000~1300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한 채널에는 1만9000명이 입장해 소식을 받아보고 있었다.

박영덕 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은 “버닝썬 직후 물뽕 예방 키트 등 다양한 예방 정책이 있었지만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한국은 유치원 때부터 금연교육이 이뤄지는 것과는 달리 마약 교육은 부재하다. 유아기부터 마약 종류, 성범죄 상황 등 위험성을 교육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여성보호과 관계자는 “마약류 성범죄 예방을 위해 GHB라는 마약만 따로 대응하고 있지는 않고,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인식개선, 홍보를 하고 있다. 관련 자료를 제작 배포해 필요한 곳에서 교육하거나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성범죄에 이용되는 마약이 물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면유도제, 졸피뎀, 스틸록스 등 다양한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가 많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법상으로 약물로 인한 성범죄를 특히 엄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따로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 이 같은 문제점에 입각해 지난해 7월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마약 등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성폭력범죄의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박진실 마약전문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미성년자가 음료수에 몰래 넣어진 GHB를 마시고 사망한 사건 이후 GHB 를 가장 위험한 단계의 마약으로 규정했었다. 영국의 성범죄법은 약물로 인한 성범죄를 종신형까지 처할 수 있다. 일본 또한 약물강간의 경우 형량을 강화한다”며 “한국의 경우에도 버닝썬을 계기로 마약 성범죄 대응에 첫걸음을 떼긴 했지만, 더 신속하게 수사하고 엄벌에 처하도록 하는 등 법안 재정비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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