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0일 오후 2시경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상가. 이 상가에는 무려 19개의 공인중개소가 입주해 있지만 이날 낮에 문이 열린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길 건너 5000가구가 넘는 대규모 단지에도 상황은 마찬가지. 평일 낮이었지만 영업 중인 공인중개소는 찾기 어려웠다. 이 상가 내에 있는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지금 여기 조사 다녀서 문 닫지 않았느냐”며 “(서울시에서 부동산 불법행위) 조사 단속반 다니니깐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토허제(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하면서 난리”라고 덧붙였다.
잠실동 인근 또 다른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호가는 크게 올랐고 실거래가도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이 추세는) 조금 더 흘러갈 것 같다”며 “토허제가 풀렸으니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가 가능하다고 보는 인식 때문”이라고 전했다. 다음날인 11일 오전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인근도 토허제 여파는 여전했다. 대치동 한 공인중개사는 “잠실이 먼저 올랐다”면서 “그렇다 보니 대치동이나 삼성동 쪽도 ‘우리도 올라야지’ 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2월 12일 강남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 중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등의 국제교류복합지구 인근 아파트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지정을 일부 해제한 지 한 달여 남짓. 부동산 시장은 호가와 실거래가를 가리지 않고 급격한 가격 상승 흐름을 보이면서 출렁이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토허제 해제 이후) 판이 뒤집혔다”며 “토허제는 별것 아닌 것으로 인식했는데, 생각보다 그 여파가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 폭등’이 발생했던 2018년과 비교하는 분석도 나온다. 작금의 상황이 강남3구를 시작으로 서울 전역과 수도권까지 파장을 미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토허제 해제가 아파트 가격 상승에 유일한 요인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금리 인하, 지난해 강화된 대출 규제가 완화된 점, 서울 지역 공급 부족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토허제 해제가 가격 상승 시기를 앞당긴 측면이 있다는 데에는 입을 모은다.
기존에 서울 시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이른바 ‘잠·삼·대·청(잠실동·삼성동·대치동·청담동)’으로 불리는 국제교류복합지구 일대와 강남구 압구정동·영등포구 여의도동·양천구 목동·성동구 성수동 주요 재건축·재개발 단지와 신속통합기획 및 공공재개발 후보지 등이었다. 서울시는 이 가운데 ‘잠·삼·대·청’을 중심으로 지정을 해제했다.
이번 결정에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배경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토허제 규제가 광범위하게 적용되다 보니 거주이전 자유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가장 컸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사유재산 침해 논란이 꾸준히 있다 보니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취지로 도입됐지만, 주변 다른 지역에서 풍선 효과처럼 가격이 오르는 등 효과를 거두긴 어렵단 비판도 잇따랐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토허제 규제가 있었지만 반포동은 계속 신고가였다”며 “실효성이 떨어지는 규제”라고 설명했다. 결국 서울시는 해제 발표 당시 “(토허제를) ‘핀셋(선별)’ 지정으로 전환해 시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가지고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주간 변동률 0.68%… ‘文정부 폭등’ 연상
서울시의 해제 발표 직후 시장은 들썩였다. 호가는 물론 실거래가도 뛰기 시작했다. 강남구 소재 한 공인중개사는 “호가를 3억원 이상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집주인들이 오히려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매물도 없다”며 “여태껏 토허제로 가격 변동이 위축됐던 만큼, 보상심리도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가격 상승은 통계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첫째 주(3월 3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에서 강남3구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 대비 급등세를 나타냈다. 특히 송파구의 경우 0.68% 급등하며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뒤이어 강남구(0.52%)와 서초구(0.49%) 순이었다.
특히 송파구와 강남구의 수치는 시장에 충격을 줬다. 마치 문재인 정부 당시 ‘집값 폭등’ 시기를 떠올리기 충분했다. 송파구는 2018년 2월 첫째 주 당시 0.76%를 기록했다. 이후 7년1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강남구 역시 2018년 9월 첫째 주 기록했던 0.56% 이후 6년6개월 만에 비슷한 수준으로 기록됐다. 비록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지만,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때보다 집값 상승이 더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김 소장은 “오히려 심각하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집값 흐름 자체가 본격 상승 구간에 있었다”면서 “이번엔 아직 조정 구간이라고 여겨졌는데, 주간 변동률이 그 정도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은 아직 오르지 않아야 하는 시기인데 급가속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2018년 당시에는 금리도 낮았으며 상승장이었던 시기였다. 이에 비해 지금은 아직 변동 폭이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는 것이다.
다른 요인도 있지만 “심리적 요인이 커”
토허제 해제가 부동산 시장에 ‘꿈틀거림’이 아닌 ‘후폭풍’으로 다가온 데에는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지난 1월 14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강남의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청에 “해제를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송파구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시장은) 그때 한 번 출렁였다”며 “그때부터 거래가 되기 시작했고, 결국 2월 12일에 (서울시가) 풀자마자 오르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3구에 ‘지금 못 들어가면 앞으로 힘들다’는 심리적 자극도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수민 NH농협 부동산전문위원은 “심리적 양극화에 대한 부분도 있다”면서 “(해제 이후) ‘지금 못 들어가면 이제 앞으로는 정말 못 들어간다’는 심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잠실이 그렇다”면서 “이런 수요들이 우르르 몰려들면서 ‘마지막 기회가 열렸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억제돼 있던 소위 ‘강남 입성’ 욕구를 토허제 해제가 건드렸다는 해석이다.
부동산 시장은 이미 올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집값 상승을 예측해왔다. 금리 인하와 맞물린 대출 규제 완화,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스트레스 DSR 3단계 등에 대한 대비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가격 상승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여기에 이른바 ‘똘똘한 한 채’를 선택하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도 커졌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지방에 여러 채를 가진 자산가도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향하다 보니, 강남이나 한강 벨트로 몰리게 되는 것”이라며 “전국구 수요가 강남으로 몰리면서 수요가 풍부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토허제 해제가 집값 상승 곡선을 가파르게 만든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앞서 윤수민 전문위원은 “(거래량이나 시장 상황은) 가장 저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며 “이제 바닥을 찍고 올라가려는 시기에 불을 지핀 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 역시 “물론 토허제는 ‘마중물’ 정도”라면서도 “급가속 페달을 밟은 격”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문제는 SNS를 비롯해 온라인상에서 거래 정보가 난무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정도로 혼돈을 줬다는 점”이라고 전했다.
吳 시장 “가격 상승 예상… 호가 위주 취재”
집값 상승과 시장에 혼돈을 준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서울시는 진화에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 3월 9일 설명자료를 내고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전·후 22일간의 실거래 자료를 비교한 결과, 전체 아파트 거래량은 해제 전 78건에서 해제 후 87건으로 9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토허제 해제가 집값 상승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과 관련해 “중형 아파트를 대표하는 전용면적 84㎡를 보면, 거래량은 해제 전 35건에서 해제 후 36건 거래돼 1건 증가했다”면서 “평균 매매가격도 26억9000만원에서 27억1000만원으로 상승률(1%)이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오 시장 역시 다음 날인 10일 “약간의 가격 상승은 예상했던 것”이라며 “보도되는 것들은 다소 앞서나가는 경향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특히 호가 위주로 취재가 돼 그렇다”며 “3~6개월간 예의주시하며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비정상적일 정도로 과도하면 다시 규제하는 것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서울시가 발표한 실거래 자료에는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윤 전문위원은 “통계는 항상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실거래로 반영되려면 자금 조달 계획서부터 시작해서 한 달은 걸린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통계로 반영되는 데까지는 시차가 보름에서 한 달 정도까지는 걸린다고 본다면,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호가가 뛰는 것과 함께 실거래가도 크게 오르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토허제 해제 2주 만인 지난 2월 26일 30억원에 거래됐다. 직전 신고가 28억8000만원에서 1억원 넘게 오른 것이다.
‘마·용·성’도 꿈틀?… 여파 어디까지
관건은 강남에서 촉발된 상승 흐름이 어디까지 퍼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미 상승 흐름을 탄 시장이 한강 벨트 ‘마·용·성(마포구·용산구·성동구)’을 비롯해 서울시 전역과 판교나 동탄 등 수도권으로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윤 전문위원은 “문제는 ‘전이’ 여부”라면서 “다른 지역들까지 어떻게 얼마나 퍼져 나가는지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수도권으로 ‘전이’됐다는 분석도 있다. 앞서 김 소장은 “마포나 용산도 오르는 모양새”라며 “강남 쪽이 올랐으니까 ‘나도 올려야 팔고 갈아탈 수 있다’는 심리”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 나아가 결국은 동탄신도시 등 수도권으로도 퍼지는 형태”라고 말했다.
토허제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비판도 나온다. 앞서 윤지해 연구위원은 “가격 조절 기능은 없다고 본다”며 “시장이 이미 증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토허제 규제 지역들이 가격 하락 또는 보합 수준에 머물렀어야 하지만, 압구정이나 여의도 등의 경우 지난해 가장 크게 올랐다”면서 “단기적으로 억제 효과는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미미하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김 소장 또한 “토허제는 애초에 집값을 잡을 수 없는 규제이며, 단지 불편하게 하는 규제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강남3구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데, 박원순 시장 당시 토허제를 실시한 것도 문제였고 이번에 갑자기 해제한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