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면 윤석열 때문에 이재명이 대통령 되게 생겼잖아요.” 자신을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밝힌 직장인 25세 남성 김모씨는 ‘조기대선이 어떻게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혀를 내둘렀다. 국민의힘 당원 30세 남성 서모씨도 “솔직히 윤 대통령에게 배반당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윤 전 대통령의 ‘기습’ 비상계엄은 2030세대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윤 전 대통령의 지난 대선 승리 과정에서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이대남(20대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다. ‘서부지법 사태’로 드러난 일부 계엄 옹호 세력도 존재하지만, 다수의 이대남들은 계엄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분위기다. 투표권을 가진 후로 줄곧 보수 정당만 찍어왔다는 25세 남성 이모씨 역시 “이유를 막론하고 비상계엄은 잘못됐으며, 그에 따른 탄핵은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전통적 강성 보수 지지층인 6070세대와 이재명 전 대표를 포함해 더불어민주당의 확실한 지지 세력인 4050세대는 견고하다. 이미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현 시점. 상대적으로 2030세대는 대선 승리를 위해 반드시 포섭해야 하는 세대로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2030 남성들이다.
앞서 ‘응원봉 집회’로 불리는 탄핵 촉구 집회는 20·30대 여성들이 주축을 이뤘다.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길거리에 앉아 윤 전 대통령 탄핵과 파면을 촉구하기도 했으며, 일부 탄핵 반대론자를 제외하고 ‘내란종식’에 지지를 보낸다.
반면 20·30대 남성들은 비교적 탄핵 찬성 집회 참여가 저조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고 이들이 탄핵 반대 집회에 몰려간 것도 아니다. 이대남들은 상대적으로 ‘목격자’의 관점에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중도층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 대선에서 중도와 이대남은 ‘보수 대결집’에 한 축으로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보수화된 이대남’은 가설 아닌 현실
물론 이번에도 이대남이 보수 후보를 지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목소리도 있다. 이제껏 ‘정치적 이대남’의 보수화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형성된 것으로, 실체가 없는 ‘허풍’이라는 주장도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2년 대선과 지난해 총선을 짚어보면 더 이상 ‘이대남의 보수화’는 가설이 아닌 현실이다.
우선 2022년 대선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세간에 충격을 줬다. 단순히 초접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만이 아니었다. 각 후보의 20대 득표율이 성별로 극명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당시 윤 후보는 20대 남성에서 58.7 %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예측됐다. 반면 이 후보는 20대 여성에서 58%로 예측되며 윤 후보를 크게 앞섰다. 이 같은 흐름은 예견된 결과였다. 이미 선거운동 기간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으며,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세대포위론’을 앞세워 2030 남성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의 반감을 득표로 끌고 온 전략이었다.
2년 뒤 열린 2024년 총선에서도 보수 정당은 참패했지만 20대 남성의 보수 결집은 견고했다. 당시 총선은 민주당이 압승하며 ‘보수의 참패’로 평가된다. 실제 지상파 3사 지역구 출구조사에서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전 연령대에서 민주당이 지지 정당 1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이대남들은 달랐다. 당시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이하 남성에서 지지 정당 1위는 47.9%로 예측된 국민의힘이 차지했다. 민주당은 46.4%로 예측되며 근소하게 2위로 밀려난 것이다. 심지어 30대 남성에서도 이 현상은 도드라졌다. 30대에서 국민의힘은 48.3%로 예측되며 46.6%로 예측된 민주당보다 1.7%포인트가량 앞섰다. 전직 국민의힘 의원실 출신 한 관계자는 “(그때는) 그나마 이대남들이 지지를 보내줬기 때문에 100석을 지켰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다만 이 선거에서는 개혁신당이라는 새로운 변수도 존재했다. 이대남들은 이전부터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에게 강한 지지를 보내며 그의 최대 기반으로 성장했다. 결국 보수 정당이 분화되면서 이대남들의 표심도 갈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11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공개한 ‘22대 국회의원선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에서 쫓겨나듯 탈당한 뒤 개혁신당을 창당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지지세가 약화했다는 것이다.
이대남이 ‘이념적으로 결집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현재 ‘이대남’은 문재인 정부가 싫어서 보수화된 것”이라며 “(윤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 이후에는 다른 선택지가 놓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이들이) 현재는 보수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만, 특정 이념이나 지역에 경도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명도 싫은데, 뽑을 사람이 없네요”
이대남들의 정치적 특성을 하나로 규정할 순 없어도 ‘반(反)이재명’ 정서가 다른 세대에 비해 두드러지는 건 분명한 현상으로 보인다. 앞서 직장인 김씨는 “탄핵 이후 아쉽다는 보수 이대남들도 있다”면서 “그건 바로 이재명 대통령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싫어서”라고 말한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에 직장을 구했다는 26세 남성 직장인 이모씨는 “팔자에도 없는 대통령을 이재명이 하게 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못 막겠지만, 보수 정당에 투표는 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소위 ‘반이재명’과 ‘반민주당’ 정서는 정치적으로 이대남들 다수의 뇌리 속에 박혀 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여성 정책이나 남북 평화 등의 기조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특히 2019년 ‘조국 사태’를 거치며 공정이 무너진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분노했다. 이후 이들의 정치적 지향점은 보수로 쏠렸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대남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이번 파면에 대해 아쉽다는 입장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솔직히 매우 안타깝죠.” 지난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25세 남성 이모씨는 “나는 ‘윤 대통령이 파면되면 안 됐는데’라는 생각도 했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수긍해야 하고, 이제 대선을 잘 치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회초년생인 25세 남성 윤모씨는 “계엄령 자체는 반대했다”면서도 “탄핵 기각을 바랐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윤씨는 그럼에도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더 크다”며 “많이 혼란스럽고 아쉽다”고 하소연했다.
이씨와 윤씨의 말처럼 ‘보수 이대남’들에게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과 이어진 윤 전 대통령 파면은 큰 혼란을 불러왔다. 자신이 지지했던 윤 전 대통령과 보수 진영에 대해 크게 실망했으며, ‘이제 누구를 지지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정치적 갈림길에 섰다.
이런 고민은 자연스럽게 보수 진영 후보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수 진영 내 대선 후보 중 이들의 선택지에 걸리는 뚜렷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직장인 이씨는 “모두가 리스크가 있다”고 표현했다. 이어 “경선을 통해 보수 정당의 후보가 선출되면 지지는 하겠지만, 마땅한 후보가 없다고 느낀다”면서 “이재명과 붙어서 해볼 만한 후보가 잘 안 보인다”고 말했다. 대전에 거주하는 박모(28)씨 역시 “국민의힘 후보를 뽑고 싶어도 뽑을 사람이 없다”며 “경선을 지켜보겠지만 ‘진퇴양난(進退兩難)’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이러다가 투표 안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보수 이대남’에 놓인 세 가지 선택지
‘반이재명’ 정서와 ‘비상계엄’ 속 이대남들의 복잡한 심경은 본선 후보를 확정 지을 때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7주 남짓한 짧은 대선 레이스에서 “이재명은 절대 안 뽑는다”는 ‘보수 이대남’에게 놓인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국민의힘 경선 후 선택’ ‘이준석 지지’ ‘무투표’가 그것이다.
우선 국민의힘 경선을 지켜보겠다는 인식이 많다. 앞서 박씨는 “일단 경선 과정을 보면서 판단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 역시 “건실한 후보를 찾고 싶은데, 결국 경선을 통과해 이재명과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일단 국민의힘은 지난 4월 9일 관련 일정을 의결하며 당내 경선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경선룰과 관련해서는 ‘당원 투표 50%, 일반국민 여론조사 50%’인 이른바 ‘5 대 5’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청년조직 한 관계자는 “‘반이재명’ 정서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당원만 가지고 뭉칠 수도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당내 (청년들을) 통합할 수 있는 후보가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도 소위 ‘찬탄(탄핵 찬성)파’와 ‘반탄(탄핵 반대)파’로 갈린 청년들을 뭉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관계자는 또 ‘중도 이대남’을 향한 확장성을 강조했다. 그는 “그다음은 중도에 있는 청년들을 공략하는 확장성이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청년들에게)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믿음과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년들의 미래가) 무너지지 않게끔 ‘내가 책임지겠다’를 외칠 수 있는 후보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밝힌 서씨 역시 확장성에 공감했다. 서씨는 “중도층까지 끌어모아서 이재명 후보랑 가장 붙어볼 수 있는 후보가 되면 좋겠다”며 “이런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사실 개인적으로 젊은 여성들 표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목소리를 내면 또 반작용으로 젊은 남성층 표가 날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국민의힘 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이대남의 표심이 갈릴 것이라는 가설에는 전문가들도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결국 비상계엄에 동의하는지 여부에 달렸다”며 “비상계엄에 동의하는 이들은 김문수 전 장관에 힘을 싣겠지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경우 이대남들의 이탈 가능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경선 지켜볼 것”… 이준석도 ‘변수’
보수 이대남의 두 번째 선택지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다.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백모(29)씨는 “지난 정부부터 이어져 온 ‘이대남=기득권’ 프레임에 불만”이라고 말했다. 백씨는 “국민의힘이 온전히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결별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며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우리 또래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두 번째 선택지에도 변수는 존재한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탈락할 경우와 이 의원이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를 할 경우 이대남들의 고민은 더욱 커진다. 홍준표 대구시장을 지지한다는 전모(24)씨는 “홍 시장이 경선에서 탈락할 경우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을 고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앞서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만약 김문수 전 장관이 최종 후보로 선출될 경우, 이대남의 이탈은 이준석 지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도 아니지만,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혼나봐야 해’라는 정서가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후보를 바라보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앞서 직장인 이씨는 “이준석한테는 표를 주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가) ‘이대남’으로 통칭되지만 우파적인 방향성을 갖고 투표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세대포위론이나 페미니즘의 반작용에 대해 지지하는 사람들이 뽑을 수도 있겠지만, 갈라치기 하는 정치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사회초년생 윤씨 역시 “이준석이 나와도 안 될 것 같다”며 “표가 갈라질 것을 생각한다면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마땅히 투표할 후보가 없어 투표를 포기하는 선택지다. 앞서 “투표 안 할 수도 있겠다”는 박씨의 말처럼 보수 진영에 대한 실망감을 무투표로 표출하는 것이다. 다만 이대남들이 이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반이재명’ 정서로 인해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