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만 찍고 좌석에 앉아주세요.” “제발 협조 좀 해주세요!”
지난 16일 오후 7시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진행된 서울 잠실야구장. 구단 측 안전 요원이 쩔쩔매면서 이렇게 외쳤다. 치어리더들이 야구 점퍼를 벗어 짧은 상하의가 드러나자 응원석 단상 앞 좌석에 있던 10여 명이 대형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이곳은 사진기자석이 아닌 3루 관중석. 사진을 찍는 이도 기자가 아닌 관중이다. 좋아하는 선수와 치어리더를 찍겠다며 관람객들 시야를 가리자 항의가 빗발쳐 구단 요원이 급파된 것이다.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시대,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런데 지난달 22일 개막한 KBO 리그가 ‘대포 카메라족(族)’으로 몸살을 앓는다. 대형 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대포’를 연상한다고 해 그런 별칭이 붙었다. 아이돌, 유명 배우를 원거리에서 찍겠다며 팬들이 수백만 원짜리 고성능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문화가 야구장에도 생긴 것이다. 대포족이 선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관중석 맨 앞줄을 점령하고, 카메라 거치대로 계단 통로를 막다 보니 관람을 방해한다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오! 노시환(한화 간판 타자) 워어어 날려줘요~ 환상적으로!”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 경기가 있던 지난달 25일 오후 8시쯤, 한화 응원석에서 관중이 파도타기를 하는 중에도 셔터 소리는 어김없이 이어졌다. 치어리더가 춤을 추자 “저 춤이야!” 하며 남성 대포족 렌즈 방향이 한곳으로 몰렸다. 관중석 곳곳에선 “야구 좀 봅시다” “가리지 좀 마세요” 하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대포족은 성별에 따라 찍으려는 대상이 확연히 갈린다. 선수들이 잘 보이는 더그아웃 바로 앞은 여성 팬이 주로 몰린다. 반면 치어리더가 있는 단상 앞은 남성 팬들의 촬영 거점이다. 20대 여성 대포족은 “야구 티켓이 아이돌 콘서트에 비하면 저렴한 데다 선수를 코앞에서 볼 수 있으니 가성비가 높다”고 했다. 치어리더들은 일부 남성 대포족이 신체 부위를 지나치게 확대 촬영한다고 호소한다.
KBO는 지난 2월 개막을 앞두고 연 이사회에서 ‘대포 카메라’ 문제를 정식 의제로 올리고 대형 카메라 반입 금지 시행 여부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라이온즈는 응원석에서 50㎜ 초과 렌즈 사용 시 경고 후 퇴장 조치를 하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는 얼마 전 서울 고척돔 경기장 곳곳에 관람 방해 시 경고 후 퇴장 조치 가능하다는 안내 문구를 부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