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동중학교 사회교사를 채용해야 하는데, 1억~1억 5000만원을 주고서라도 정교사가 되려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
21일 공개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동생 조모(53)씨의 판결문에는 그가 저지른 교사 채용비리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뒷돈을 받고 교사를 부정 채용하게 한 혐의로 지난 18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2015년 지인인 박모씨에게 이처럼 ‘뒷돈’을 주고 교사가 될 사람을 물색해 달라고 했다. “그 돈을 받아다 주면 소개료를 주겠다”고도 제안했다. 조씨가 시험지를 빼내오면 이를 대상자에게 전달해 합격시키는 방법으로 범행을 하기로 했다.
◇시험지와 답안지 빼내주고, 실기·면접 문제까지 유출◇
박씨는 지인인 공범 조모씨에게 이를 전달했고 두 사람은 물색 끝에 사범대에 재학중인 지원자 A씨를 찾았다. 이들은 A씨 부모에게 교사 채용대가로 1억 3000만원을 요구했다. A씨 부모는 착수금으로 3000만원을 건넨 후 2016년 1월 창원의 한 커피숍에서 나머지 1억원을 건넸다. 교사 채용 1차 필기시험 시험지와 답안지를 건네받은 대가였다. 조씨가 재단 이사장인 어머니 집에서 빼돌린 것이었다. A씨는 필기시험 만점을 받고 교사로 채용됐다. 조씨는 1억원 중 박씨에게 수수료로 2000만원을 주고 나머지를 챙겼다.
조씨는 2016년 9월에도 박씨에게 같은 부탁을 했다. 이번엔 다른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던 B씨가 대상이 됐다. 그의 부모는 조씨 공범들에게 8000만원을 건넸고, 역시 조씨가 빼낸 필기시험 문제지와 답안지를 건네받았다. 이번엔 2차 수업 실기시험과제와 면접 예상문제까지 유출됐다. 그는 응시자 5명중 최고 점수로 정교사로 채용됐다. 조씨는 이번엔 수수료 1300만원을 뺀 나머지를 챙겼다.
이처럼 범행을 기획하고 주도했으며 1억 4700만원의 뒷돈을 받고 시험문제를 빼내 교사를 부정 채용하게 한 조씨에게 선고된 형은 징역 1년이다. 반면 조씨 지시에 따라 대상자를 물색하고 수수료를 받은 박씨와 공범 조씨는 징역 1년,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확정됐다. 이는 조씨가 이들과는 달리 배임수재 혐의는 무죄를 선고받고 업무방해만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조씨는 채용업무 담당자가 아니어서 배임수재 주체인 ‘타인 사무처리자’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사회에서 부동산 및 재산관련업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장으로 임명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법원내에서도 지나치게 형식적 판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배임수재는 돈 받은 사람이 사무처리자에 해당하는지를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형식적인 직책에 얽매일 게 아니라 실제로 채용에 영향을 미쳤는지, 채용권한을 가진 사람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채용업무를 총괄하는 주체인 웅동학원 이사장은 이 범죄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만 했을 뿐, 사무국장 조씨가 어떻게 어머니인 이사장 집에서 시험지를 빼돌릴 수 있었는지를 비롯해 조씨의 ‘실질적 영향력’에 대해선 아무 판단도 하지 않았다. 이는 유사 사건의 판단과도 배치된다. 춘천지법은 2017년 한 여고에서 행정실장을 맡고 있던 재단이사장 아들이 교사채용 대가로 5200여만원을 받은 사건에서 배임수재 혐의를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도 2013년 역시 교사채용비리를 저지른 한 공업고등학교의 이사장 아들에게 배임수재를 인정했다.
유죄로 인정된 부분에 대한 양형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 변호사는 “요즘 대부분의 채용비리는 대상자에게 면접에서 후한 점수를 주는 정도”라며 “시험지와 예상문제를 빼내고 뒷돈을 받는 것은 매우 원색적이고 죄질이 좋지 않은 채용비리 형태”라고 했다. 실제 이 사건과 유사한 형태의 채용비리 사건 양형과 비교해서도 매우 낮다. 서울남부지법은 2017년 한 재단법인 이사장이 교사채용 대가로 2000만원을 받은 사건에서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했다. 수수액이 조씨의 7분의 1에 불과하지만 양형은 더 무겁다. 대전지법은 2015년 한 고교 상담실장이 4억 8400만원을 받고 교사채용에 관여한 사건에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채용담당자가 아니면 배임수재가 안 된다” 며 근거로 든 두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2008년 판결은 A대학 교수가 B 대학의 대학원 학위논문 작성 편의를 봐주겠다며 대학원생들로부터 돈을 받은 사건이었다. 1999년 판결은 한 대학의 사회체육학과 교수로서 편입학 업무와 일체 관련 없는 교수가 돈을 받은 경우로, 대학 이사장과 친인척이거나 특수관계도 아니었다. 두 사건 모두 재단 이사장의 아들이자 사무국장으로 학교 사무 전반을 관장해 온 조씨 사건에 비견할 게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테니스장 공사 없었는데도 ‘허위 공사대금’ 혐의에 전부무죄 선고◇
조씨는 아버지 회사로부터 학교 공사를 하도급받았는데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승소 확정된 금액이 2017년에만 94억원에 달했다. 검찰은 실제 공사를 하지 않은 조씨가 허위로 소송을 내 재단에 총 115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며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들 혐의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공사대금 채권이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그 근거로 "조씨 아버지 건설회사(고려종합건설)가 부도가 난 후 신축 공사를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조씨 회사(고려시티개발)에 하청을 준 것을 알게 됐다”는 학교 관계자 진술, 고려종합건설이 고려시티개발에 발급한 세금계산서 등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현장 소장은 “조씨 회사에 하도급을 준 사실이 없다”고 했다. 6억원이 들었다는 테니스장 공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허위채권을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증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단이사장을 지낸 조씨 아버지가 생전에 남긴 문서에는 아들의 공사대금 채권이 허위임을 전 이사들과 교육청이 알고 있고, 이사회 회의록을 제시하면 아들의 승소판결문이 허위임이 드러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 조씨가 친필로 쓴 내용을 직원들이 전달받아 타이핑한 문서였다.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형사소송법 314조는 진술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그의 진술이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특신상태)임이 증명되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재판부가 “웅동학원 이사들 중 허위 채권임을 아는 사람이 없고, 메모 원본이 없다”며 특신상태를 부인한 것이다. 조씨는 허위채권으로 소송을 내면서 이 사실을 이사회에 알리지도 않았다. 그로 인한 배임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재판부가 오히려 검찰이 범죄로 본 상황을 들어 조씨에게 불리한 증거를 배척한 것이다. ‘원본 존재’의 경우 조씨 아버지 육필을 전달받아 타이핑한 직원들 모두 재판에서 그 존재를 인정했었다.
재판부는 “조씨 아버지가 웅동학원에 바친 수십 년간의 헌신과 감안하면 웅동학원의 건실하고 튼실한 미래를 걱정한 나머지 말년에 아들과의 관계를 희생해 가면서공사대금 채권을 부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해당 문서는 조씨로부터 “서울 서초동의 한 빌딩 공사대금을 달라”는 요구를 받은 그의 아버지가 “아들은 공사를 하지도 않았고 그럴 능력도 안 된다”며 작성한 문서였다. 조씨 아버지는 이 문서에서 아들에 대해 “****(당시 국산 최고급 승용차)를 자기돈이 아니라 회삿돈으로 할부구입했다”고 하기도 했다. 아들이 채권을 주장하자 아버지가 마음먹고 아들의 재정상태와 능력에 대해 폭로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런 문서를 아버지가 재단을 위해 아들의 손해를 감수하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선해했다.
재판부가 허위채권 여부를 세밀히 나눠 판단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씨 사건처럼 허위 공사대금 채권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 통상 실제 공사 여부를 일일히 따져 소송사기를 판단한다. 공사가 대부분 이뤄졌는데 극히 일부 마감재가 빠지는 등 흠이 경미한 경우가 아니면 소송사기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특히 재판부 스스로도 “진실일 가능성이 있는 채권이 5분의 3 이상”이라고 했다. 이는 거꾸로 5분의 2가량이 허위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부장판사는 “테니스장과 같이 실제 공사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분명히 따졌어야 하고 전체를 무죄선고하기는 어려운 사건으로 보인다”고 했다.
◇ 공범 재판부도 “교직을 상품으로 전락시켰다”고 질타, ‘월권행위’로만 평가한 조씨 재판부
조씨 지시를 받고 ‘돈 심부름’을 한 공범들은 배임수재, 업무방해죄 혐의가 모두 적용돼 각각 징역 1년,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조씨의 경제적 이득을 착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학의 자율성을 악용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원이라는 직위를 단순히 돈만 있으면 구입할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를 함에 있어 그 실행행위를 분담했다”고 했다. “많은 수의 예비 교원들이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좌절감과 허탈감을 느꼈다”고도 했다. 채용비리 행위를 질타하며 결국 이 사건 범행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조씨라고 한 것이다.
이들은 형이 무겁다고 항소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도 “우리 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가치”라며 “양형기준 권고형량 중 사실상 최하한의 형이 선고된 점 등을 종합하면 1심 선고형이 무거워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주범’으로 지목된 조씨의 재판부의 양형 이유는 간단하다. “웅동학원에서 소송대응과 부동산관리를 담당하는 사무국장의 지위에 있음을 기화로 자신의 주도 하에 공범들과 함께 권한 밖의 일인 교원 채용 업무를 위계로써 방해했으며, 그 과정에서 다액의 금품을 수수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는 게 전부다. 조씨 행위를 사무국장의 권한 범위를 넘어 선 ‘월권행위’로만 평가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범 판결에서도 설시한 이 사건의 본질과 심각성을 정작 주범인 조씨 재판부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며 “그만큼 이 사건 판결이 비상식적이라는 한 단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