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며 최소 500명 이상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비상상고심이 15일 열렸다. 복지원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된 지 31년 만이다. 검찰은 이날 “무죄를 파기해달라”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이날 오전 형제복지원 원장 고(故)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 비상상고심 변론기일을 열었다.
형재복지원은 군사정부 시절인 1975~1986년 약 3만8000명을 수용했던 전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부산에 설치된 이 시설은 부랑인이 아닌 일반 시민을 강제 수용하고, 노역·구타 등 가혹행위를 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원 자체 기록에 따르면 12년간 약 513명이 사망했고, 시신 일부는 암매장된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언론보도로 이 시설의 인권침해 참상이 알려졌고, 검찰은 박인근 원장 등을 특수감금 등 혐의로 기소했으나, 대법원은 당시 내무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업무상 횡령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됐다.
◇"인간의 권리는 평등한 것인가요?" 피해자들 호소
재심(再審)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가 피해자들을 대리해 변론을 맡았다. 이날 공판에는 중년에 이른 형제복지원 피해자 40여명이 참석했다.
박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참상이 이미 폭로됐지만, 비슷한 시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가려지고 피해자가 부랑인이라는 낙인과 편견 때문에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피해자 측은 대법원에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최선의 해결책을 고민해달라”고 호소했다. 박 변호사는 “지워진 피해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고, 일부는 지금도 여전히 장애인수용시설, 정신병원, 노숙인시설 어딘가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검 “원장 특수감금 무죄 파기해달라”
이날 검찰 측에서는 고경순 대검 공판송무부장 등이 참석했다. 고 부장은 “사건을 하나하나 밝혀내지 못한 채 특수감금 등 일부 범죄로만 기소했다”며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특수감금 혐의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을 어겨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고 부장은 “그동안 이 사건은 지속적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피고인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않고 세상을 떠났다”며 “이번 비상상고를 통해 피고인의 특수감금이 정당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천명해야 한다. 이것이 피해 생존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사회 정의를 세우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라고도 했다.
◇비상상고, 원심파기해도 피고인 무죄 판결에는 효력 없어
비상상고는 법원의 심판이 법을 어겼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사건도 비상상고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공소시효의 제한도 없다. 그러나 대법원이 비상상고에서 원심(이 사건 특수감금 무죄)을 파기해도 피고인(박 전 원장)의 판결에는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 피해자의 명예회복이나 손해배상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사건 비상상고는 지난 2018년 11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신청했다. 문 총장은 당시 피해자들을 찾아 검찰의 과오를 사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