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이덕훈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에 압수된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있다”며 “이행(비밀번호 해제)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법조인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진술거부권,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기본적인 방어권까지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독재 시대에도 없던 반(反)인권적,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추 장관은 또 서울고검의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에 대한 독직폭행 혐의 기소(起訴)가 적정했는지 대검 감찰부에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법무부 장관이 불법성 논란이 벌어지지도 않은 일선 검찰청의 기소에 대해 감찰을 지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달 서울고검은 채널A 수사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을 ‘독직 폭행’한 혐의로 정진웅 차장검사를 기소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그 후속 조치로 지난 6일 법무부에 정 차장검사 직무 배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추 장관은 “(직무 배제 요청 과정에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이 배제됐다”며 오히려 서울고검의 기소를 문제 삼았다.

추 장관이 이날 지시한 두 사안은 모두 자신이 과거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수사를 일임했다가 ‘검·언 유착 의혹’ 입증에 실패한 채널A 사건과 연결돼 있다. 법조계에선 “오히려 사과를 해야 할 추 장관이 법 위에 군림하는 태도로 헌법과 법률을 농단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은 “특정인(한동훈)을 겨냥한 법이 국민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추 장관은 생각은 해본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동훈 검사장도 “헌법상 권리 행사를 ‘악의적’이라고 공개 비난하고 이를 막는 법 제정을 운운하는 것은 황당하고 반헌법적”이라고 했다.

추 장관 감찰 지시에 대해 김한규 전 서울변회 회장은 “무슨 법적 근거로 직접 기소 과정의 적정성 여부 조사를 대검 감찰부에 지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 중대한 불법”이라고 했다.


정의당·금태섭 “秋 인권유린” 진중권 “차라리 고문해라”

추미애 법무장관이 12일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해 ‘피의자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을 강제하는 이른바 ‘추미애법’ 추진을 지시하자, 법조계와 정치권 양쪽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재적, 초법적 발상’” “추 장관의 광기(狂氣)”와 같은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법조인들은 “윤석열 총장과 (그 측근인) 한 검사장을 찍어내기 위해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술 거부권과 방어권까지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차라리 고문을 합법화하세요"

법조계에선 ‘추미애법’을 놓고 ‘모든 국민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헌법 제12조에 반(反)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피의자는 방어권 차원에서 진술 거부나 증거인멸을 넘어 허위 진술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며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고 처벌하겠다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시하는 독재적,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했다. 금태섭 전 의원은 “인권 보장을 위해 수십 년간 쌓아 올린 중요한 원칙들을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정부에서 하루아침에 이렇게 유린해도 되나”라며 “법률가인 나부터 부끄럽다”고 했다.

12일 오전 추미애 법무장관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며 의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정의당도 이날 논평을 내고 “국민의 자유권과 존엄을 훼손하는 법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법무부 수장이 인권을 억압하는 행태를 보인다면 국민들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장관님, 차라리 고문을 합법화하세요”라고 했다.

한 변호사는 “추 장관은 아들의 군무 이탈 의혹 사건에서 보좌관에게 군 관계자 전화번호를 직접 보내줌으로써 수사선상에 올랐다”며 “추 장관은 당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모두 파악할 수 있도록 스스로 휴대전화를 내놓고 비밀번호까지 알려주고 나서 그런 주장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MBC 보도 근거로 감찰 지시

서울고검은 지난달 한동훈 검사장을 독직 폭행한 혐의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을 기소했다. 이날 추 장관은 그 기소 과정에 대한 감찰을 대검 감찰부에 지시하면서 “정 차장검사에 대한 기소 과정에서 주임 검사를 배제하고 윗선에서 기소를 강행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보도됐다”고 했다. 이 의혹은 MBC가 지난 4일 보도했다. 보도 직후 서울고검은 “내부 이견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의견이 갈렸던 부분은 기소 여부가 아니라 독직 폭행이 상해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고 한다. 상해까지 인정되면 유기징역 1년 이상의 중형이 처분된다. 추 장관은 이런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친(親)정권 성향의 MBC 보도를 근거로 유례가 없던 개별 사건의 기소 과정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것이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12일 한동훈 검사장을 겨냥해 ‘피의자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을 강제하는 이른바 ‘추미애법’ 추진을 지시하자, 법조계와 정치권 양쪽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재적, 초법적 발상’” “추 장관의 광기(狂氣)”와 같은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다. /2020.11.13

검찰 내부에서는 “법무장관이 하다 하다 기소에까지 개입하는 ‘검찰 농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추 장관이 대검 감찰부에 직접 감찰을 지시한 것도 위법이란 지적이다. 정진웅 차장검사 기소 과정 감찰까지 포함하면 추 장관은 지난 한 달 사이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었던 지난 2018년 중앙지검 수사팀의 ‘옵티머스 펀드 사건’ 무혐의 처분, 특수활동비 논란 등을 포함해 총 세 번에 걸쳐 윤 총장을 겨냥한 감찰을 대검 감찰부에 지시했다.

일부 검사는 “서울고검은 최근 무혐의로 결론 난 추 장관 아들의 ‘군무 이탈 의혹’의 항고 사건을 담당하고 있고, 만약 서울고검이 그 수사를 직접 재수사하겠다고 결정한다면 추 장관은 곤란해질 수 있다”며 “그래서 서울고검을 더 압박하는 것이라면 부적절하고 이해 충돌에 해당한다”고 했다.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추 장관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치주의라는 골수에 파고들어 나라를 망치는 암세포가 돼 가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