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장관이 지난 27일 대검의 ‘판사 성향 분석 문서’에 대해 “특정 재판부에 이념적 낙인을 찍고 모욕적 인격을 부여하며 비공개 개인정보 등을 담은 사찰 문서”라고 주장한 데 대해 검찰 안팎에서 “법조계에서 판사 분석은 당연한 데 ‘불법 사찰’이라고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해외 법무 공조를 담당하는 구승모 대검찰청 국제협력담당관은 29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리고 “미국에선 정부 홈페이지에 판사의 학력·경력은 물론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지도 게시하고 있다. 이는 공적 정보(public information)”라며 “판사의 스타일에 맞춰 공판을 준비하는 것은 미국의 검사와 변호인에게 너무나 당연한 통상 업무”라고 했다.
구 담당관은 “미국은 판사를 선거로 뽑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판사들로 구성되어 있다보니 판사의 성향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온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런 현실 속에서 최대한 ‘공정한 재판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판사에 대한 정보들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라며 “학계에서도 판사의 개인적 성향, 정치적 이념, 성별, 인종, 경력 등은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을 한 논문이 상당히 많았다”고 했다.
그는 “판사들이 유사한 배경을 가지고 동일한 교육을 받고 선발돼 근무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아직까지는 판사마다 미국처럼 큰 편차를 보이지 않고 비교적 예측가능한 균일한 판결을 기대할 수 있다고 봐서 판사에 대한 정보가 폭넓게 공개되지 않아 온 것일 수도 있다”며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든 판사가 ‘신’과 같아서 모든 사안에 대해 균일한 판결을 내린다는 이상론을 믿지 않고, 판사도 사람인지라 성향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성향을 미리 알아본 일을 비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도 점진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판사 선발을 확대해나가는 상황에서, 이를 ‘예측가능한 재판의 공정성’을 검증하고 담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평가해야 할까. 또는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하고 징계할 사유로 삼아야 할까”라고 했다.
공판 검사들은 “판사 특성 분석은 통상 업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15년 서울고검은 ‘공판업무 매뉴얼’도 만들었다. ‘항소심 재판장은 고등부장으로서 자신만의 재판에 대한 사고, 진행 방식이 있어 재판부별로 성향 또는 재판 진행 방식에 커다란 편차가 있으므로, 재판부별 특성을 파악해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상당수 법조인은 “추 장관이 억지와 궤변으로 공판 검사 통상 업무를 사찰로 둔갑시켰다”고 했다.
구 담당관은 또 글에서 “최근 상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고 누구는 이에 저항하고 누구는 이를 따랐다는 씁쓸한 소식들이 들려온다”며 “오로지 법과 원칙에만 따른 진지한 결정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