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지난달 택시 기사를 폭행했을 당시 현장에서 경찰관의 임의동행 요구를 거부했으며 이후 경찰의 소환조사 요구에도 응하지 않은 것으로 21일 드러났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차관 조사 없이 6일 만에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다. 사유는 ‘택시 기사의 진술 번복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파출소 동행 거부에 소환 조사도 불응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6일 늦은 밤 택시 기사의 폭행 신고를 받고 서초동 A아파트에 출동한 서울 서초파출소 소속 경찰관은 이 차관에게 파출소로 가서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같은 임의동행 요구는 법원영장이 없는 상태에서 경찰관 재량에 따른 것이어서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진 않는다.
이후 서초파출소는 ‘특정범죄가중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와 함께 사건을 서초경찰서로 넘겼다. 서초서는 이튿날인 7일 이 차관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날짜가 특정된 출석 요구 통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 차관은 해당 일자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닷새 뒤(12일), 서초서는 택시 기사의 처벌불원서 제출을 이유로 이 차관을 더는 부르지 않고 사건을 내사종결 처리했다. 경찰은 “9일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간 택시 기사가 (신고 때와 달리) ‘운행 중이 아니었고, 폭행도 별것 없었다’는 취지로 얘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는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하게 돼 있다. 경찰관이 해당 범죄를 인지하고도 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특가법상 ‘특수직무유기죄’가 적용될 수 있다.
당시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는 증거로는 해당 택시의 ‘블랙박스’가 있다. ‘택시 블랙박스를 확보했느냐’는 본지 질문에 경찰은 “블랙박스 파일을 확인했지만 폭행 장면 영상이 찍혀있지 않아 따로 저장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영상이 없더라도 음성만으로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뒤늦게 “음성도 없었다. 이유는 모른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특수직무유기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는지 규명하기 위해 블랙박스 파일 확인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다.
◇유사 사건은 입건 후 최소 벌금형
경찰은 “판례를 고려해 이 차관의 내사 종결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본지가 유사한 사건을 검색한 결과 대부분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전자 폭행에는 특가법 5조의10 1항이 적용되며,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울산지법은 지난해 11월 택시에서 요금 문제로 말다툼하다 주먹으로 택시기사 얼굴을 때리고 왼손으로 뒷목과 뒤통수를 밀친 A씨에게 벌금 900만원을 선고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초범이고, 합의가 된 경우 200~9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며 입건이 안 되거나 기소유예되는 경우는 없다” 며 “이 차관은 내사종결로 전과 기록이 남지 않은 특혜를 받은 셈”이라고 했다.
‘진단서’가 있으면 ‘상해'가 인정돼 법정형이 징역 3년 이상으로 올라간다. 찰과상 정도의 가벼운 상처도 마찬가지다. 광주지법은 작년 2월 집 앞 경비실에 도착해 택시기사가 불친절하다며 멱살을 잡아 흔든 사건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 1월 택시기사가 하차를 위해 잠을 깨우자 목을 조르고 머리를 때린 사안에서 징역 1년 6개월 및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안양지원은 지난 11월 목적지에 도착한 후 하차를 요구하는 택시 기사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든 B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李, 입장문에서도 “경찰서 시비 가려질 것”
이 차관은 이날 법무부를 통해 입장문을 냈다. 본지 보도로 사건이 드러난지 이틀 만이었다. 그는 글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 “택시 운전자께도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혐의에 관해서는 “경찰에서 검토를 하여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고 했다.
한 언론은 이날 서울중앙지검의 ‘개정 교통사범 수사실무’를 근거로 “목적지에 도달해 승객이 자고 있어 깨우는 경우엔 운행 목적이 달성돼 ‘운행 중’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차관 사건은 특가법 위반이 아닌 단순폭행이어서 검찰에 송치됐어도 불기소 처분이 될 사안”이라고 보도했다. 이 언론은 해당 지침이 특가법이 개정된 2015년 6월 이후인 2016년 검찰 내부망에 등록돼 시행됐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해당 수사 실무는 2013년 4월 만들어진 것인데 이후 개정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2016년 그대로 내부망에 게시된 것”이라며 “업데이트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뿐, 일선에선 유사 사례를 기소해 유죄를 받은 사안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검찰 일각에선 “대검의 한 간부가 이 차관 사건을 방어하려 친문 매체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