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 25-2부는 23일 자녀 입시 비리 및 사모펀드 비리 등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혐의 15가지 가운데 네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정 교수의 입시 비리 혐의는 전부 인정하면서 “우리 사회가 입시에 대해 갖고 있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고 질타했다.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불법 투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정 교수는 이날 징역 4년, 벌금 5억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뉴시스

◇”딸 입시 활용된 ‘7대 스펙’ 허위·조작”

정 교수는 2013년 6월 아들이 앞서 받은 동양대 상장에서 총장 직인(職印)을 스캔해 딸 조민씨가 수상자로 된 ‘동양대 총장 표창장’을 위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부분은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재학 증명서 위조 장면과 비교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위조된 표창장이 다른 상장과 일련번호 위치 및 상장 형식이 다른 점, 표창장 직인 형태가 그냥 총장 직인을 찍었을 때와 다른 점 등을 볼 때 정 교수가 위조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가 2009년 발급한 조민씨의 인턴 증명서를 놓고도 검찰과 정 교수 측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당시 조민씨와 같은 증명서를 발급받은 단국대 장영표 교수의 아들 등은 “조민씨를 세미나에서 본 적이 없다”고 재판정에서 증언했지만 정 교수 측은 “당시 조민씨와 인사를 했다”는 반대 증인을 내세웠다.

재판부는 “조민씨는 뒤풀이에 참석하기 위해 세미나장에 혼자 왔을 뿐 인턴 활동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조 전 장관의 서울대 법대 사무실 컴퓨터에서 발견된 인턴십 확인서 작성·인쇄일 등을 종합하면 센터장 직인을 보관한 직원 김모씨 도움을 받아 한인섭(당시 센터장) 교수 허락도 없이 인턴 증명서를 위조했다”고 밝혔다.

고교 1학년인 조민씨가 제1 저자로 등재된 단국대 의과학연구소 논문에 대해 재판부는 “조씨가 논문 작성에 아무 기여를 하지 않았다”며 “단국대 연구소의 인턴 확인서 역시 허위”라고 했다. 2008년 공주대 인턴 확인서 및 논문 제3 저자 등재, KIST와 부산 아쿠아팰리스 호텔 인턴 확인서 역시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 서류들은 모두 2013년 조민씨의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제출됐다. 2014년 부산대 의전원에는 동양대 표창장과 함께 각종 인턴 활동이 사실처럼 기록된 자기소개서가 제출됐다. 이를 통해 조민씨는 서울대는 서류 전형을 통과했고 부산대는 최종 합격까지 했다. 재판부는 “허위 서류로 이 대학들의 입시 전형 업무가 방해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동양대 총장 표창장이 없었다면 부산대 의전원에 합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다.

◇사모펀드·증거인멸 혐의 상당 부분 인정

‘조국 일가’ 의혹은 조 전 장관이 작년 8월 법무장관에 지명된 직후 그 가족이 ‘수상한’ 사모펀드 투자를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굴러가기 시작했다. 법원은 이날 펀드 관련 혐의도 상당 부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정 교수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WFM 주식 12만주를 거래한 것에 대해 2만여 주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자본시장법 위반이라고, 미용사 등 지인 계좌를 이용한 차명 투자는 금융실명법 위반이라고 봤다. 다만 사모펀드 출자 약정 금액을 실제보다 부풀려 작성한 혐의, 허위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회삿돈 1억5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됐다. 증거 은닉 혐의에서는 코링크PE에 함께 투자한 동생 정모씨에게 관련 서류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부분이 유죄가 됐다.

이날 재판부는 입시 비리에 대해 “공정한 경쟁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에게 허탈감과 실망을 야기했다”고 했다. 사모펀드 관련 혐의에 대해선 “시장경제질서를 흔드는 중대한 범행”이라며 “고위공직자 조국의 아내로서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신고 등에 성실하게 응할 의무가 있는데도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재판부는 정 교수에 대해 “법정 구속이 타당하다”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을 경우 관련 증거를 조작하거나 관련자들에게 허위 진술을 종용하는 등 증거인멸 행위를 재차 시도할 위험이 높다”고 했다. ‘총장 표창장 위조’를 증언한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을 상대로 ‘번복 압박’을 가하거나, 정 교수가 재판에 등장시킨 증인들의 증언이 오락가락했던 게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 교수는 재판부가 최후 진술 기회를 주자 떨리는 목소리로 “변호인이 저를 대리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며 울먹였다. 결국 정 교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구속 사유를 조국씨에게 통지하겠다”는 말에 “네”라고 답하기만 했다. 이날 정 교수는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