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법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최근 사의를 밝힌 현직 법원장과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9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 이미 판사 연임을 포기해 사직 의사를 밝힌 고등법원 부장판사 2명을 합치면 모두 11명이 사의를 밝힌 것이다.

매년 초 정기 인사 전 법원장과 고법부장 사직자는 5명 이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법조계에선 ‘원로 판사 엑소더스(대탈출)’란 말이 나온다. 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 아니면 어차피 대법관이 못 된다는 최근 법원 분위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사의를 밝힌 9명 중 3명은 김주현 수원고등법원장, 김용대 서울가정법원장 등 모두 수도권 소재 법원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역 법원장 2명도 사표를 제출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나머지 6명은 고법부장들이다. 6명 중엔 김필곤·김환수·이범균·이동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와 강경구 수원고법 부장판사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필곤 부장판사는 2003년 “제 11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이적 단체”라고 판결한 바 있다. 김환수 부장판사는 2018년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김명수 대법원장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이범균 부장판사는 2013년 간첩 혐의로 기소된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에게 검찰의 입증 부족을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동근 부장판사는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사고 당일 7시간 행적’ 관련 보도를 해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가 당시 여야 모두에게서 곤욕을 치렀다. 강경구 부장판사는 2010년 전북 지역의 남성고와 군산중앙고의 자율고 지정을 취소한 김승환 전북교육감의 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연루돼 여당의 공격을 받았던 임성근·이민걸 부장판사도 작년 10월 법관 연임을 포기하고 다음 달 퇴임한다.

원로급 판사 11명이 동시에 법원을 떠나는 것은 ‘진보 대법원’과도 관련이 깊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 중 6명이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및 민변 출신이다. 한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중 추가 임명하게 될 대법관 2명 역시 진보 성향 판사 중에서 선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원장과 고법부장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다”고 했다. 법조계 인사들은 “경륜이 풍부한 판사들이 대거 법원을 나가는 것은 재판받는 국민 입장에선 손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