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10.29

현직 부장판사가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불법 출금 및 은폐 의혹에 대해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아무리 실체적 진실이 중요해도 적법절차 원칙이 무시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법절차와 야만, 그리고 선택’이란 글을 썼다. 그는 수사기관이 용의자 체포시 범죄사실의 요지와 변호인조력권을 고지하도록 한 ‘미란다 원칙’을 설명하며 글을 시작했다. “1963년 21세의 미란다라는 청년이 18세 소녀를 강간한 것을 이유로 중형을 선고받고 주 대법원에서도 유죄로 유지됐지만 연방 대법원은 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진술거부권이 고지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기했다”며 “모든 수사기관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으면 적법절차의 원칙(Due Process of Law)위반을 이유로 그 자백을 쓸 수 없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적법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법치주의란 있을 수 없다”며 “그것은 마치 종이배로 대양(大洋)을 건너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아무리 실체적 진실이 중요해도, 아무리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절박해도 적법절차 원칙을 무시하고 사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검사가 조작된 출금서류로 출국을 막았다'는 기사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명멸(明滅)하는 한 단어는 ‘미친 짓’이다”고 했다. 그는 “(불법 출금에 대해) 공정하게 구성된 수사주체에 의한 엄중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여전히 진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것은 몇몇 검사의 일탈이 아니고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에 대한 본질적 공격”이라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여기서 한발만 더 나가면 기한 지난, 대상이 바뀐, 서명이 없는 그런 영장으로 체포되고, 구속하고, 압수하게 된다”고도 했다.

그는 “나쁜 놈 잡는데 그깟 서류나 영장이 뭔 대수냐, 고문이라도 못할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 야만 속에서 살겠다는 자백”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