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는 모습./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퇴 다음날인 5일 검찰 내부에선 현 정부의 검찰개혁,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추진 관련 비판 의견이 이어졌다. 박노산 대구지검 서부지청 검사는 이날 오전 검찰 내부망에 ‘법무부 장관님, 살려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을 풍자했다.

그는 “현재 중대범죄로 취급하여 수사 중인 월성원전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건,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 등에 대하여 수사를 전면 중단함은 물론, 현재 재판 중인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 등의 사건, 울산시장 하명수사 사건 등에 대해서도 모두 공소를 취소하면, 저희 검찰을 용서해주시겠느냐”며 여권이 추진하는 수사청의 의도가 정권 수사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꼬기도 했다.

◇박범계, 대법관에 “의원님 살려주세요 해보라” 풍자

박 검사는 “참다못해 빼드신 법무부 장관님과 장관님 동지분들의 칼날에 목이 날아가게 생긴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참회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때가 한참 늦었지만, 제 철없던 행동에 대한 용서를 빌며 검찰 동료들의 비뚤어진 마음도 올바른 길로 되돌리고 싶다”며 글을 시작했다.

그는 그러면서 “소인은 여지껏 검찰개혁, 검찰개혁 말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바람직한 검사가 마땅히 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장관님의 뜻을 들은 바가 없사와, 이렇게 장관님의 명을 경청하고 받들어 비천한 목숨이라도 연명하고자 키보드를 들었다”고 글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박 검사의 글 제목은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대법관인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에게 예산과 관련해 “’의원님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절하게 말해보라고 수차례 말해 논란이 된 것을 풍자한 것으로 풀이됐다.

◇ “높으신 분 수사하면 반역, 꿈에도 몰랐다”

박 검사는 올린 글에서 수사청법을 가리켜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였다고 써 있던데, 그건 참말 큰 오해”라며 “한 줌밖에 안되는 저희 검찰이 어찌 감히 그런 역모를 꾀하겠나이까”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저 심히 무지한 탓에 범죄가 의심되면 사람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사를 함이 본분인 줄 알았을 뿐, 높으신 분들을 수사하면 그것이 반역이 된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으니, 소신들의 우매함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여 주소서”라고 덧붙였다.

◇ “유권무죄 무권유죄' 검찰 표어 삼겠다”

박 검사는 ‘정권 비리’ 수사 관련 현 정권의 태도를 여러 차례 강하게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부터 저희 검찰은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낡아빠진 속담이나 ‘범죄 없는 깨끗한 권력’에 대한 허황된 꿈은 버리고 ‘유권(有權)무죄 무권(無權)유죄’를 저희 검찰의 표어로 삼아 군림하지 않는 겸손한 자세로 작금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꽃 피우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저희를 명실상부한 검찰개혁의 주체로 인정해주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공수처는 왜 수사·기소 모두 하나

여권의 검찰 수사·기소 분리 주장에 대해서는 공수처를 사례로 들어 반박하기도 했다. 박 검사는 “지당하신 장관님과 동지분들의 말씀이니 분명히 옳겠지마는, 아직 소인이 헷갈리는 게 남았다”며 “왜 저번에 만드신 공수처는 수사를 하고 나서 스스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인지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글을 올리다 보니 소인의 무지함에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부끄럽다” “미리미리 공부하여 중대범죄 수사도 스스로 금하고, 분수를 알아 높으신 분들의 옥체를 보존하며, 모순되는 행동을 삼갔어야 했건만, 왜 장관님과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을까”라며 “바라건대 장관님의 고매한 뜻을 감추지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하명해주시면 저희 검찰, 다시는 거역하지 아니하고 완수하겠나이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