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개발지 투기 의혹이 남양주·하남 등 3기 신도시 전체로 확산하는 가운데, 그 전모를 밝히겠다며 정부가 지정한 조사 주체와 조사 방식,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이번 의혹 조사는 총리실이 지휘하는 정부 합동조사단이 지난 4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역대 신도시 투기 의혹은 검찰 합동수사본부가 대대적으로 수사했다”며 “그런데 이번엔 연루 가능성이 제일 의심되는 국토부에 ‘셀프 조사’를 맡겼으니 누가 그 결과를 믿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6일 “공적(公的) 정보를 도둑질해서 부동산 투기하는 것은 ‘망국의 범죄’”라며 “대대적 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①조사 방법: 사람이 아닌 땅·돈 추적해야
합동조사단은 현재 관련 부처 공무원 본인과 배우자·부모·자녀의 토지 거래 현황을 추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부동산 업계에서조차 “주먹구구식 졸속 조사가 될 것”이란 말이 나왔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부동산 투기의 속성상 ‘차명(借名) 거래’가 많고 공무원들이 대상일 경우 더욱 그렇다”며 “신도시와 인근 토지를 포함해 최근 3년 이내 소유권 변동 내역을 파악한 뒤 공무원들의 취득 여부 및 경위 등을 조사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은 “‘돈 되는 땅'을 전수조사하고 매입 자금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고, 이에 대해선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법조인들도 동의했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인은 “3기 신도시 개발지에 포함됨으로써 특히 막대한 이득을 남겼던 맹지(盲地), 보상 기준에 딱 맞춰 구입된 토지, 수혜를 봤던 개발지 인접 토지들을 집어낸 뒤 매입 자금을 추적하는 방식의 검찰 강제 수사가 필수”라고 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요즘은 각종 규제가 많아서 섣불리 샀다간 오히려 손해를 본다”며 “개발 및 보상 계획을 미리 정확히 알고 ‘돈 되는 땅’을 구입한 사례를 선별해 추적하면 투기 혐의자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나올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노련한 수사 인력을 투입하면 두 달이면 가능하다고 본다”고도 했다. 검찰이 투입되면 오는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이전에도 대략적인 수사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번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참여연대와 민변도 7일 성명에서 “‘제 식구 봐주기'식 축소·소극 조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크다”고 했다. 이어 감사원 감사의 필요성도 재차 주장했다. 법조인들은 이에 공감하면서도 “감사원의 경우, 민간인에 대한 강제 수사권이 없는 만큼 한계가 있다”며 “결국 속도 있는 진상 규명은 검찰 수사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②조사 주체: 가장 의심받은 기관에 맡겨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무총리실은 국토교통부 중심으로 합동조사단을 꾸려 3기 신도시 6곳과 대규모 택지 개발지 2곳에 대한 투기 의혹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한 법조인은 “오해를 막기 위해 배제해야 할 기관에 콕 집어서 조사 권한을 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올해 신설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도 투입됐다. 당·정·청은 7일 밤 총리 공관에서 비공개 협의를 갖고, 자료 제출 의무가 없는 공무원 가족·친인척 등의 투기 정황이 드러나면 국수본이 강제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정 기관 관계자는 “국수본 수사 범위가 총리실 합동조사단에 좌우된다는 의미로, 과거 검찰 합수단에 비교하면 한계가 명백하다”고 했다.
앞서 1990년 노태우 정부는 검찰에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해 성남시 분당 등 5개 지역 신도시 관련 투기 의혹을 수사했다. 금품 수수 및 문서 위조 등에 가담한 공직자 131명을 포함해 부동산 투기 사범 987명을 구속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7월에도 검찰 합수본이 경기 김포 등 12개 지역 2기 신도시 관련 투기 의혹을 수사해 공무원만 27명(7명 구속)을 적발했다. LH 직원 13명이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지정 전 토지를 매입해 문제가 된 이번 사례와 유사하다.
일부 여권 인사는 “LH 투기 의혹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 사업·대형 참사)에 포함되지 않아 경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부동산 투기 수사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뇌물 수수나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등의 범죄가 드러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③실효성: 벌써 “솜방망이 처벌” 전망
정부가 이번 의혹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밝혔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는 처벌은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처벌 규정이 모호한 데다가 투기 혐의를 입증한다 하더라도 해당 토지나 이익을 몰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공공주택 특별법’은 공직자나 공기업 직원이 업무 처리 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제공·누설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토지나 시세 차익을 몰수하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만약 LH 직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땅을 사서 수억원의 이익을 챙겨도 벌금 5000만원만 내면 된다.
땅을 산 시점에 직접적인 업무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미공개 정보 이용 여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지난달 광명·시흥 지구에서 땅을 산 LH 직원 13명은 모두 2015년 이후 신도시 관련 부서나 광명시흥사업본부에 근무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LH에서 비밀 누설 금지, 미공개 정보 이용 금지 규정을 어겨 적발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강제 수사로 구입 경위나 자금원에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나면 굳이 관련 부서 직원이 아니더라도 기소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