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황제조사’ 논란 등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최근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김진욱 공수처장이 8일 ‘형법각론’ 책을 들고 출근했다. 법조계에서는 “김 처장이 출근길 공개적으로 ‘형법각론’을 들고 나온 이유가 궁금하다”는 반응과 함께 “책표지를 보니 최소 20년은 넘은 책인데, 공수처장이 20년 전 책을 본다니 할 말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처장은 이날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건물 출근길에 ‘형법각론’ 책을 손에 들고 관용차에서 내렸다. ‘공수처 검사 정원 미달로 추가 인사위원회를 열 것인가’ ‘이규원 검사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김 처장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관용차를 제공한 ‘에스코트 조사’ 논란이 불거진 후 이전과 달리 출근길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김 처장이 형법각론을 든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자 법조계에서는 특히 해당 형법각론이 최소 20년은 넘은 과거의 책이라는 사실이 회자했다. 김 처장이 들고 있던 형법각론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형사판례연구회장 등을 역임한 고(故) 이재상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펴낸 책으로 지난 1989년 초판이 발간됐고, 이후 수차례 개정판이 나왔다.
이 교수가 별세한 2013년 이후에도 제자들이 개정 형법과 새로운 판례 등을 반영해 11판까지 개정판을 출간했다. 그런데 이날 김 처장이 들고 있던 형법각론은 표지 문구 등을 봤을 때 최소 2000년 이전, 1989~1996년 사이 발간된 책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나온 개정판은 표지 상단에 ‘보정판’ 또는 ‘제5판’ 등이 한자로 적혀 있는데 이날 김 처장의 책에는 이런 문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지방 검찰청 검사는 “다른 책도 아니고 형법각론은 법 개정, 새로운 판례 등이 추가 반영되고 보완되면서 개정판이 계속 나오는 책인데 20년 전 책을 본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수도권 한 판사도 “김 처장이 과거 수험생 또는 연수원 시절 보던 책을 익숙하게 들고 나온 것 아니냐”고 했다. 김 처장은 1989년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김 처장 책의 정확한 출간일은 알 수 없으나 형법은 이 책 초판 발간(1989년) 이후 23번 개정됐다. 한 부장검사는 “형법각론은 훌륭한 책이고 좋은 수험서지만, 개정판이 수차례 나온 마당에 20년도 넘은 옛날 책은 라면냄비 받침대로밖에 못 쓴다”고 했다.
다른 책도 아니고 형법각론을 들고 출근한 이유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또다른 한 부장검사는 “공수처와 검경 사이 이첩·이송 등은 형사소송법 관련이라 최근 이첩·재이첩 논란과 형법각론은 무관해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김 처장이 최근 황제조사 관련 직권남용으로 고발당한 것, 관용차 논란 해명 관련 보도자료 허위공문서 작성 의혹에 휩싸이자 이런 점을 검토해보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