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택시 기사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 이용구 법무차관이 합의금으로 1000만원을 택시 기사에게 준 것에 대해 “통상의 합의금보다 많은 금액이라고 생각했지만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런 금액을 드렸다”며 “(폭행 장면을 담은) 블랙박스 영상 삭제의 대가는 아니었다”고 3일 주장했다. 그러나 합의 후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해 “블랙박스 영상을 지우는 게 어떻냐”고 요청을 한 사실은 인정해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차관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폭행이 있던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 8일 사과와 피해회복을 위해 택시기사분과 만났고,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사죄한 뒤 합의금으로 1000만 원을 송금했다”며 “통상의 합의금보다 많은 금액이라고 생각했지만 공수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런 금액을 드렸다”고 밝혔다. 택시 기사 A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11월 8일 이 차관이 집 근처 카페로 찾아와 사과와 함께 합의금 1000만원을 제시하며 ‘블랙박스 영상을 지우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일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된 37초짜리 블랙박스 영상에는 이 차관이 지난해 11월 6일 택시 기사를 폭행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이 차관의 서울 서초동 자택 부근에 다다른 기사가 운행 도중 “여기 내리시면 돼요?”라고 묻자, 뒷자리에 있던 이 차관은 갑자기 “이 XX놈의 XX”라고 욕을 했다. 기사가 “저한테 욕하신 거예요”라고 묻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 차관은 다짜고짜 기사에게 달려들어 수 초간 멱살을 잡고 “너 뭐야”라고 다그쳤다.
이 차관은 이날 입장문에서 “합의를 하면서 어떤 조건을 제시하거나 조건부로 합의 의사를 타진한 사실은 전혀 없었다”며 “합의금은 블랙 박스 삭제 대가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차관은 “합의가 종료돼 헤어진 이후,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해 ‘영상을 지우는 게 어떻냐'는 요청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는 영상을 지워달라고 한 이유에 대해 “택시 기사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영상이 제3자에게 전달되거나 유포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뿐, 블랙박스 원본 영상을 지워달라는 뜻은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택시기사 분 사이에 피해자 진술 내용과 관련하여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피해회복을 받은 피해자와 책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가해자 사이에 간혹 있는 일이지만, 변호사로서 그런 시도를 한 점은 도의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이동언)는 조만간 이 차관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로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도 이 차관에게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차관은 취임 약 6개월 만인 지난달 28일 사의를 표명했고, 3일 사표가 수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