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문화교류국(과거 225국)은 2017년 그들의 지령으로 충북의 노동계 인사들이 결성했던 지하조직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이하 충북동지회)를 통해 국내 선거와 정치, 외교 상황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것으로 8일 전해졌다.

스텔스機도입 반대 일당들 - 북한의 지령을 받고 미국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 반대 활동을 한 혐의를 받는 충북 청주의 시민단체 활동가 4명이 지난 2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청주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이날 4명 중 3명은 영장이 발부돼 구속됐다. /연합뉴스

본지가 입수한 충북동지회 일당의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북한과 충북동지회 간에는 2017년 6월 이후 지난 5월까지 84차례에 걸쳐 암호화된 파일 형태의 지령문과 보고문이 오갔다. 북한은 F-35A 도입 반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 분위기 조성, DMZ 평화인간띠 활동 외에도 남한 내 반(反)보수정당 투쟁, ‘조국 사태’와 관련된 중도층 ‘포섭’ 선전활동, 반미(反美) 감정 확산 등을 지시하는 지령을 반복적으로 하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충북동지회 일당은 2017년 북측 지령을 받고 조직을 결성하면서 명칭을 ‘조선노동당 자주통일 충북지역당’으로 정했다가 북측이 ‘어떤 경우에도 조선노동당이란 표현을 이용하면 안 된다’는 지침이 담긴 지령을 내리면서 최종적으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로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당국이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일당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 내용을 보면, 조선노동당 산하 문화교류국이 2017년 6월부터 올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직후까지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지령을 보내온 내용들이 드러난다. 북측의 지령 하달은 2018년 9월 평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9·19 남북 합의가 도출된 이후 남북 간에 유화 국면이 조성되면서 본격화됐다. 북측은 2019년 조국 사태, 2020년 총선과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논란, 2021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등 남한 내 정치 현안과 관련해 ‘보수 정당 무력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라는 지령을 반복적으로 하달했다고 한다.

◇北, ‘反보수 정당 활동’ 지령 반복

구속영장 청구서에 따르면 북한의 대남 공작부서인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은 2017년 6월 24일 첫 지령을 보내 ‘앞으로 설립될 회사의 조직 구조 체계 구성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2019년 1월 24일엔 ‘2019년도 연간활동지침’을 보내 ‘하위당 조직을 꾸리고 회사의 체모에 맞는 조직 구조와 체계를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인사들을 포섭해 반국가단체인 ‘충북동지회’ 조직의 외연을 확대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북측은 또 2019년 3월 12일 보낸 지령에서 ‘민중당(현 진보당)을 비롯한 진보정당, 단체들이 황교안이 당 대표로 등장한 이후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자한당(자유한국당, 국민의힘의 전신) 패거리들의 발악 정책 등을 각성 있게 대하면서 철저히 제압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다음 총선(2020년 4·15 총선)에서 자한당을 참패로 몰아넣고 그 책임을 황교안에게 들씌워 정치적으로 매장해버리는 것을 기본전략으로 틀어쥐어야 한다’(2019년 6월 22일), ‘보수 패당의 책동을 분쇄하고 정국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하는 것을 당면목표로 내세우고 투쟁해야 한다’(2019년 11월 17일), ‘보수통합 신당인 미래통합당을 사회적으로 고립·위축시키기 위한 실천 투쟁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2020년 2월 25일), ‘보수 패당의 집권야망을 짓부수어버리는 것을 회사의 당면 투쟁과업을 내세워야 한다’(2021년 4년 19일) 등의 지령도 남한의 보수정당 공격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들은 ‘반보수 실천투쟁을 전개함에 있어서 유튜브를 잘 활용해야 한다. 반보수성향의 유튜브를 개설해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조국 사태’에 “중도층 쟁취” 지령

검찰 수사를 받던 조국 전 법무장관이 2019년 10월 14일 사퇴를 하자 6일 뒤인 10월 20일, 북측은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로 인해 동요하는 중도층 쟁취 사업’이라는 지령을 하달했다. 북측은 지령을 통해 ‘중도층이 현 국내 정치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로 가지도록 영향을 주어야 한다’면서 ‘현 사태는 보수의 부활과 정권 찬탈을 노리고 촛불 민심의 적폐 청산, 검찰개혁 요구에 도전해 나선 보수 세력의 기획적인 재집권 책동에 의해 빚어진 정치적 혼란이며 이를 수수방관한다면 중도층도 그 피해를 면치 못한다는 것을 널리 여론화한다’고 주문했다. 지난해 초 야권을 중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석방 요구가 나오던 상황에서는 ‘박근혜 석방론 계기 반보수투쟁 전개’(2020년 2월 10일)라는 내용의 지령을 보내 ‘<박근혜 석방론>으로 사회 전반에 반보수 투쟁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한 사업을 조직해보아야 하겠다’고 했다.

◇반미·반일 북 지령도 내려

북측은 2019년 2월 27~28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결렬되자 10여일 뒤 그와 관련된 지령도 보냈다고 한다. 북측은 ‘우선 지역사회의 각계가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도록 여론유도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초보적인 예의와 외교 규범도 모르고 안하무인격으로 놀아댄 트럼프 패거리들의 날강도적 본성과 파렴치성을 걸고 사회 전반에 반미(反美), 반(反)트럼프 감정을 확산시키기 위한 활동도 실정에 맞게 조직하도록 하라’고 했다. 2019년 8월 16일에는 ‘반일(反日) 민심을 이용해 한·미·일 동맹 파열을 위한 실천 활동 전개’ 지시를 하기도 했다.